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 당선작 [장려상] 엄마, 그리고 비정규직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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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대전에서 결혼하고 큰아이를 낳고 몇 년간 경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구에서 신협에서 근무했고, 출판사나 학원 경력도 있었지만 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구인 사이트를 찾아보았지만, 콜센터 상담 인력을 구하는 광고만이 무성했습니다. 주 5일 근무에 단순한 업무라는 광고 문구에 떨리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5분도 되지 않아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국민카드라는 이름은 나를 잠시나마 설레게 했습니다. 앞으로의 나의 눈물을 모른 채 말입니다.

 

면접을 보고 한 달간 160시간의 교육을 받고 매일매일 시험을 보았습니다. 한 달 교육비로 40만 원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교육 날에는 최종테스트에 통과해야지만 입사할 수 있다고 해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마음 졸이며 테스트를 했던 생각과 하루하루 같이 교육을 받던 교육생의 인원이 줄어들어 결국 20명에 가까웠던 교육생이 마지막에는 2명만 입사가 되었던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중에는 동기도 없이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콜센터 일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을 일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교육만 이수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콜을 받기 시작하니 교육 때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녔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공부했던 대로 문의하는 고객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공부하는 느낌이었죠. 요조체 사용을 적당히 해야 하고, 쿠션어를 사용하고, 공감 호응을 잘해야 했고, 솔 톤의 음성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마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누군가에게 조정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뿐만이 아니었어요. 화장실 갈 때도 체크를 하고 가야 했고, 관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항상 짜증이 나 있는 듯했습니다.

“공부하고 오셨어요!!!”

“이것도 모르시면 어떻게 해요!!!”

“다른 분들은 이 정도 하시면 다 잘하세요!!!”

“제가 지난번에 말했잖아요!!!”“찾아보신 거 맞아요!!”

 

고객에게 말하며 떨리는 것도 자존감을 바닥 칠 일인데 관리자의 이런 말들은 저의 마음을 철근처럼 떨어뜨렸습니다. 나이 어린 관리자의 이런 말들이 비수가 되어 몰래 울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저와 같은 신입이 울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그 모습이 잠시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만 바보가 아니구나!’ 맘을 다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관리자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어디냐며 자리를 이렇게 길게 비우면 어떻게 하냐고요. 다시 눈물을 삼키며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며 맘을 다잡아 봅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전 콜센터 경력만 15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요즘 신입 상담사들이 저에게 물어보면 전 제 콜도 포기하고 업무를 알려 줍니다. 그때의 서러움이 그들에게도 같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또 제가 이렇게 힘겨워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결국 주변의 좋은 동료들이, 언니들이 많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직장을 다니는 모든 워킹맘이 그러하겠지만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아직도 저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다음 달이면 태어날 예정으로 몸이 너무도 무거웠던 그 날도 어김없이 전쟁 같은 아침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저희 아이 때문에 1시간이나 일찍 출근을 해주셨는데 그날따라 버스가 고장이 나서 약속된 시간에 오지 못하셨고 저는 어린이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콜센터는 컴퓨터를 켜고 시스템을 켜는 시간까지 꽤 걸리기 때문에 항상 늦어도 8시 40분까지 출근을 해야 했고 교육이다 뭐다 해서 항상 일찍 출근해야 했습니다. 9시부터 반드시 전화를 받기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저는 더 늦어지면 지각을 할 테고 지각해서 감점을 받으면 우리 조 지원비로 조원들 볼 낯도 없고 점수도 깎인다는 생각에 4세 된 아이를 잠시 어린이집 앞에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뛰어서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습니다. 택시를 타고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선생님이 도착하고 얼마 후 아이를 만났다는 전화를 걸어주셨지만, 저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회사에 출입 목걸이를 걸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들어가는데 옆에 정규직 콜센터 상담사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직장 내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들어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정규직만 가능한 직장 내 어린이집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잠시 노예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저와 같이 저의 아이도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아이까지 말입니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그 안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저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100여 콜에서 많게는 200콜을 넘게 받아냈습니다. 화장실도 실적을 보며 이 콜만 받고 가야지 가야지 하며 참다 잊어버릴 때도 많았습니다. 물을 많이 먹으면 화장실을 가야 하니 물도 조금만 마셨습니다. 그런데 목이 아프게 전화를 받고, 고객한테 욕을 먹는 것보다 제가 더 힘들었던 건 고객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시험을 보고, 점수로 매일매일 나열하고, 또 계속해서 말을 하는 나의 일은 가정에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여보!, 콜센터 일 그만두면 안 될까? 당신 너무 힘들어 보여.”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꺼낸 말이었습니다. 왜 그러냐는 저의 물음에 남편의 대답은 참담했습니다.

“당신 원래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데 말이야. 요즘 아이들이나 나한테 말도 잘 안 하고 지쳐서 그런지 짜증을 많이 내기도 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 그만두고 좀 쉬는 게 어떨까? 애들한테 좋지 않을 거 같아.”

남편의 말에 애들한테 짜증을 내고 있던 나의 모습이 악마처럼 지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가며 얼마 안 되는 월급까지 이유인 듯하였습니다. 가족 여행을 한 번 가려 해도 금요일 월요일 휴가도 쉽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하고 견디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말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종일 콜에 시달리다 보면 전 감정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서 아이들에게는 나쁜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출근하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일부터 출근 안 해. 이제 엄마가 많이 놀아줄게. 그동안 미안했어.”

아이들이 저를 안고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 곧 큰아이가 성인이 됩니다. 그런데 전 아직도 콜센터에 다니고 있습니다.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콜센터는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아직도 휴대폰을 강제 수거하고, 화장실을 제한하는 콜센터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계속되는 경쟁이 이러한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식이 변하고 있다지만 상담사들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통화하는 상담사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입니다.”라는 멘트가 가슴을 아리게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상담사를 무참히 짓밟았던 건 아닐까요? 이제 저는 상담사로 살면서도 무조건 참는 상담사가 아니라 할 말은 하는 상담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물도 맘껏 먹고, 화장실도 눈치 보고 가지 않으려 합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일하는 엄마로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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