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만 부를 수 없었던 노래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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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하 센터 후원회원

 

 

전주만 흘러나와도 둠칫둠칫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이 아무리 빼어난 춤솜씨를 자랑한다 해도 이 노래에는 관광버스 막춤이 제격이다. 한 소절을 부르면 다 같이 ‘떼창’을 하며 관광버스 막춤을 추던 그 노래.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 후략 -

〈DOC와 춤을〉

 

doc.jpg

 

주변인들에게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애’로 인식되던 내가 술 한잔하고 노래방을 가면 18번처럼 부르던 노래다. 흥겨운 리듬도 리듬이지만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자신을 만들어 봐요.”라는 후렴구의 노래 가사가 맘에 들었다.

 

평소 사람들 눈도 좀 의식하고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고 지냈다. 그런 내게 ‘이렇게도 좀 살아봐’ 하는 것 같은 삐딱하고 자신감 뿜뿜 넘치는 노래 가사에 확 꽂혔다고나 할까. 어깨춤이 절로 나는 이 노래를 가만히 앉아 부르는 건 노래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난 노래를 부를 때면 그 당시 한창 유행인 관광버스 막춤도 같이 추며 노래를 불렀다.

“완전 내숭이었네.”, “저 흥을 어떻게 감추고 살았데.”, “보기완 다르네.” 등 본인들이 알고 있던 나의 이미지에 대한 배신감이라도 느낀 듯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라는 노래 가사에 충실하며 개의치 않고 몸을 흔들었다.

 

나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지인이나 친구들은 보기와는 달리 내가 흥부자라는 걸 안다. 평소 술이라면 가족보다 더 애정하셨던 아버지와 가무를 좋아하시는 오마니의 유전자를 완벽하게 ctrl C+ctrl V하고 태어났으니 그 유전자가 어디 가겠는가. 제정신(?)일 때는 섣불리 나를 드러내놓거나 흐트러지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처음 나와 노래방을 가게 된 이들은 마이크를 잡고 어깨를 들썩이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하게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특히나 회사 특성상 사람 많고 발 없는 말이 천 리, 만 리를 가는 조직에서는 더더욱 신비주의 모드로 있던 나였으니.

 

얌전한 고양이도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이 노래는 1997년 즈음 발매가 됐다.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반응 때문인지 그 당시 대선에 선거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노래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노래를 선거송으로 사용한 대선후보가 그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암울했던 IMF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넘어왔어도 노래는 재발매되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2012년 즈음 아버지 고희연이 있던 날이었을 것이다. 가족들과 한복을 맞춰 입고 나름 짜인 프로그램대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마무리 순서였다. 연회 마무리의 하이라이트는 유흥이라고. 먼저 그날의 주인공인 아버지의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유흥이 시작되었다. 오마니가 가무를 좋아하시는 분답게 두 곡을 연달아 부르시고 그다음을 집안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주거니 받거니 하셨다. 그러다 어쩌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언니가 난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얼떨결에 내가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잔칫집에서 두 손 모아 애절하게 발라드를 부를 순 없으니 역시나 분위기에 딱 맞는 노래, 예의 그 18번을 부르기 시작했다.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씬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큰아버지 환갑잔치 이후 두 번째로 입은 한복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집안 어르신들을 비롯한 부모님 친구분들과 지인들이 하나둘씩 몸을 들썩이며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흔들흔들 실룩실룩 춤동작이 하나같이 똑같다. 오마니도, 고모들도, 친구분들도. 그날 관광버스 막춤 하나로 사람들이 대동단결했다.

 

그 이후에도 내 18번이라며 꽤 오랫동안 〈DOC와 춤을〉을 이곳저곳에서 사골 우려먹듯 많이 우려먹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그렇고 아는 이들도 이제는 조금 식상해 하는 것 같았다. 18번 레퍼토리를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어떤 곡이 신나고 다 같이 어울려 부를 수 있나 하고 나름 고심하여 골랐다. 고르고 고른 게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몇 해 전 설날에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했다. 다 모이면 열네댓 명이 되는 가족이 후딱 식사를 다 마치고 어른들끼리 2차로 술 한잔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찾아 왔는지 형부가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예전에 집에서 심심하실 때 부르시라고 오마니께 사드린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형부가 그 문제의 마이크를 꺼내오면서 그야말로 담소 모드의 집안 분위기가 졸지에 늴리리야 노래방이 됐다. 형부를 시작으로 돌고 돌은 마이크가 내게 왔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중략-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지금은 인생이야~~~ 아모르 파티~~” 16비트의 빠른 리듬 곡인 〈아모르 파티〉를 숨을 꼴딱꼴딱 넘겨 가며 불렀다. 앞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 트위스트 춤부터, 관광버스 춤, 디스코 춤에 막춤까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다. 2월의 쌀쌀한 추운 겨울이 무색하게도 찜질방을 방불케 하던 후끈했던 설날로 기억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기 힘든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하리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노래방에 안 간지 백만 년쯤 된 것 같다. 코시국 임에도 간혹 갔다는 사람을 보기는 했는데 막상 가자니 꺼림칙하고 내키지 않는다. 코로나가 종식되어 맘 편히 노래방을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모처럼 바꾼 레퍼토리 18번 〈아모르 파티〉를 신나게 불러 보려고 했는데. 망했다. 그 이전에도 최신곡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최근 바꾼 〈아모르 파티〉가 18번이라 하기엔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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