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주 52시간’ 타령,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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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중소기업중앙회는 8월 10일, 〈중소조선업 근로자 55% 주 52시간제 시행 후 삶의 질 더 나빠져〉 보도자료와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고, 매일경제, 한국경제, 동아일보 등이 이를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사설 〈“주 52시간제가 저녁 있는 삶 앗아갔다”는 근로자 호소〉에서 이 자료를 인용하며 “근로자가 원한다면 주 52시간 근무로 30년 일하는 대신 78시간 근무로 20년 일하고 조기 은퇴하는 선택지도 주어지는 게 옳다”는 주장과 함께 ‘월 단위 총량 관리’를 통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주문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이뤄진 이 조사는 설문지를 활용한 전화 조사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5.65%P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밝힌 이 조사 배경은 중소조선업 사업장의 주 52시간제에 대한 의견을 파악해 제도 개선 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조사를 통해 ‘현행 주 12시간 단위 연장근로 한도를 노사 합의 시 월 단위로 확대’할 것을 주문하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73.3%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임금이 감소했다.”라고 응답했으며 “주 52시간제 시행 전과 비교해 임금이 월평균 60.1만 원 감소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조사는 신뢰도 측면에서 몇 가지 의혹을 갖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 특별연장근로 요건을 완화하였고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확대를 통해 주 52시간을 초과하여 근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노동계가 “주 52시간제가 무력화됐다.”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2016년 이후 조선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중소조선소가 폐업하거나 일감 부족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남도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금속노조가 지난해 여름, 거제·통영·고성 지역 중소조선소 밀집 지역을 방문 조사했을 때도 많은 조선소가 문을 닫거나 조업을 단축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임금 감소의 원인이 된 근로시간이 줄어든 이유를 ‘주 52시간제’ 때문이라고 특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이번 조사에서 특별연장근로 신청 여부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별연장근로는 사전에 신청해야 하고 허가가 필요해 사업주들이 잘 신청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서울경제는 지난해 12월 7일, “조선업 특성에 전혀 맞지 않는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 ··· (중략) ··· 일감은 넘치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요.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직원들은 추가 근무를 못 하고 정시 퇴근 후에는 음식 배달 같은 부업을 하는 직원까지 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언론 보도 설명 자료를 통해 “주 52시간제에서도 초과근무, 탄력근로제 활용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조건 정시 퇴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특히 조선업은 법상 허용된 초과근로 시간의 절반도 활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특히 조선업 비중이 약 80%인 기타운송장비제조업(5~299인 기업)의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은 금년 상반기 19.0시간, 7~8월 17.7시간으로 법상 허용된 52.1시간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도 올해 5월 9일, “2020년 이후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활용한 사업장이 4년 새 400배 넘게 증가했다.”라면서 “주 52시간제 무력화는 이미 시작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18년 7월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주 52시간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된 이후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2021년 인가받은 사업장은 2,116개(6,477건 인가)라고 밝혔다.

 

경상일보는 지난해 11월 3일, 〈주문량 못 따라가는 현대차, 특별연장근로 카드 꺼냈다〉에서 “울산에서는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90일까지 다 쓰고 150일 확대를 신청한 기업체는 아직 없다. 이날 기준 고용부 울산지청에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신청한 기업체는 총 148곳이다.”라고 보도했으며, 경남도민일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원청이나 하청에서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이번 조사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특정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위한 ‘짜맞추기성 조사’로 의심된다. 진짜 속내는 ‘자유롭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 7월 19일 한국경제는 사설을 통해 “중소제조업체들이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다.”라면서 외국인력 연간 쿼터제 폐지와 직업계 고등학교 혁신을 제안하면서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 인력난을 크게 가중시켰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7월 15일 사설 〈협력업체 노조가 세계 최대 조선소 마비시켜도 어쩔 수 없다니〉에서 “이번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업종별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바람에 협력업체 직원들의 근로시간과 수입이 크게 줄어든 탓이 적지 않다.”라면서 다단계 원하청 구조에서 비롯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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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곽래건 사회정책부 기자는 기자수첩 〈‘대우조선 사태가’ 남긴 숙제〉에서 “조선소 인력 구조는 맨 위에 원청업체, 그 밑에 1차·2차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딸려 있는 전형적인 다단계다.”면서 “지금 같은 원·하청 불공정 관계 속에선 언제든 파업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사인 전혜인 기자는 〈노동자의 피눈물로 저기 떠나가는 배〉(시사IN 20777호 커버 스토리)에서 “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을까”라고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힘든 공정을 아무도 하려 하지 않고 정당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기란 어렵다. 불황이 끝난다고 하는 지금이야말로 업종 차원에서 원·하청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향후 10년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구하는 자를 구한다”라고 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0년을 준비할 생각은 있는 걸까? 자신이 처한 현실에 눈감고 언론의 선동에 취해 ‘진실’을 가리려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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