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노래방

by 센터 posted Ap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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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호 센터 기획편집위원,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음식 리뷰→영화 리뷰→옛날 TV 예능 다시 보기···. 평소와 다름없는 패턴이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성대모사로 이끌었다. 신통방통한 연예인들의 성대모사를 보던 중 문득 한 영상에 눈이 멈췄다. 가수 한 명이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에 맞춰 15명의 성대모사를 하는 영상이었다. 구성도 좋고, 한 명 한 명 특징도 잘 살린 성대모사였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한참 울고 난 후에야 〈사랑의 미로〉라는 노래가 어머니의 노래방 18번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노래방을 참 좋아했다. 기억 속의 첫 노래방은 1994년,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어머니는 굉장히 엄한 분이었다. 성적이 나쁘다고 때리고, 불량식품 먹고 싶다 징징거렸다고 때리고, 어른 앞에서 예의 없게 굴었다고 때리고···. 그러던 어머니가 종종 하는 일탈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노래방이었다. 특별한 날을 정해놓고 간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술을 먹다 가기도 했고, 집안일을 하다가 갑자기 내 손을 이끌고 간 날도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갔던 기억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어머니가 혼자 가기는 뭐하니 나를 데리고 갔던 것 같다.

 

어머니는 노래를 잘했다. 성량도 좋아서 하이라이트에 이르면 목소리가 쩌렁쩌렁했고, 고음도 힘있게 불러서 듣다 깜짝 놀란 적도 부지기수였다. 주현미, 최진희와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잘 불렀는데 술을 드신 날 특히 노래를 잘했다. 술이 들어가면 꼭 노래가 반주보다 반 박자 늦게 따라가고, 음정도 본인 느낌대로 바꿔가며 불렀는데 그게 노래의 맛을 살렸다. 한편으로 신기하면서도 나도 술 먹고 노래 부르면 저렇게 되려나 싶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술에 취해 리듬과 음정을 맞추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을 안다.

 

최초의 노래방은 1991년 부산 동아대 앞이라고 한다. 로얄전자오락실 내부에 가라오케 기계를 개조해 설치했다고 하는데 당시 요금은 곡당 300원이었다고 한다. 가라오케와 달리 비용도 저렴하고, 한국식 회식 문화와도 잘 맞았던 노래방은 매년 수천 개씩 늘었고, 1999년 3월에는 오후 10시 이전 청소년들의 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정점을 찍는다. 1999년 한 해에만 8천 개 이상의 노래방이 창업했다고 하니 노래방의 위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화사한 인테리어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럭셔리 노래방, 방이 외계인 알처럼 생긴 노래방, 1시간 계산하면 서비스로 2시간 넣어주는 노래방 등 별의별 노래방이 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절이 그렇다 보니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우정도 노래방에서 쌓았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었지만 모이면 항상 노래방을 갔다. 1차로 고기 뷔페에 가서 배가 터질 때까지 고기를 먹고 나오면, 2차는 노래방이었다. 친구 생일이라는 핑계로, 모의고사를 봤다는 핑계로, 대학 수시에 합격했다는 핑계로···. 이유는 다 달랐지만, 결론은 언제나 노래방이었다. 레퍼토리도 비슷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발라드를 부르며 분위기를 잡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댄스로 바뀌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박사의 〈space fantasy〉, 〈황홀한 고백〉 등 뽕짝까지 가곤 했다. 술 한 모금 안 먹고 저렇게까지 놀 수 있었는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회식 2차로 가는 노래방도 소원해졌다. 코로나19 이후 서로 조심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노래방에 가도 예전처럼 흥이 나지 않는다. 선곡하기 전에 ‘이 노래를 사람들이 알까.’를 생각하게 되고, ‘이 노래 불렀다가 분위기 가라앉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덜컥 망설인다. 우연히 상대방 선곡 취향이 내 취향과 맞으면 괜히 신나지만 그런 일이 흔치 않다. 추억보단 눈치가 쌓이고, 노래 실력보다는 박수 실력만 는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아 조금만 뛰어도 숨이 벅차다. 노래방을 나오면 괜히 옛 기억만 떠오르고, “예전 같지 않네”만 되뇐다. 사람들과 함께 가느니 혼자 코인노래방에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때 그 노래’를 꼽자니 이거다 싶은 노래가 떠오르지 않고, 노래방에서 있었던 해프닝만 떠오른다. 나에게는, 아니 내 세대에게는 ‘그때 그 노래’ 보다 ‘그때 그 노래방’이 더 아련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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