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의 멧골일기

by 센터 posted Ap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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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시골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 

 

 

봄이 시작되는 절기는 2월 4일 입춘이다. 그러나 몸과 맘이 느끼는 실제적인 봄은 3~4월이 되어야 한다. 장수는 3~4월에도 눈이 자주 내려서 삭막하고 눈 덮인 먼 산만 바라보면 지금이 한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 없다. 눈이 내려서 겨울인가 싶지만, 그래도 달력의 날짜를 믿고 밭 가로 달려간다. 밭둑과 계곡엔 얇은 살얼음이 덮여있고 그 밑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물소리가 졸졸 난다. 이럴 때 족대랑 괭이 들고 계곡에 가서 얼음 지치면서 개구리, 물고기를 잡아서 몸보신해야 하는데 이젠 불법이 되었다. 계곡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논밭에 냉이가 나오고 있고, 조금 나와도 쑥 나왔다고 하는 쑥이 보인다. 나는 들판에 뭔가 파릇한 기운이 보여야 비로소 봄을 느끼게 되고, 봄이 왔다는 생각이 들면 마치 지각한 학생처럼 서둘러야 할 농사일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늘 봄이 오고 나야 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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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이랑 도라지밭에 낙엽 덮어주기, 지난해 만들다 못다 한 오두막 나무 치목하기, 논밭에 거름 뿌리기, 두릅 밭에 가서 찔레 덩굴과 칡덩굴 파내기, 막걸리 담기, 고로쇠 수액/다래 수액 받기, 겨우살이 채취하기, 밭에 돌 골라 밭(산)기슭에 돌둑 쌓기, 다래 덩굴 지주대 세우고 연결하기, 물탱크 설치하고 점적 관수시설 연결하기, 감자 두둑 만들기, 감자 심기, 나무 전정하기, 나무 심기, 꽃차 만들기···.

 

이렇게 나열해보니 내가 엄청 큰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랑 1,100평 농사를 짓는 소농이다. 그리고 전문 농부 처지에서는 이 모든 일은 맘먹고 덤벼들면 열흘 치도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괭이 한 자루 들고, 혼자서, 주말에만 일하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하고 일 양은 벅찬 편이다. 또 맘먹은 대로 그날 일을 끝내기 쉽지 않다.

 

평일에 기간제로 일하고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면서 막걸리 다섯 병을 산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한 병을 마시고, 나머지 네 병은 토요일에 두 병, 일요일에 두 병을 마시기로 계획한다. 저녁식사와 함께 막걸리 한 병을 마신 금요일 밤에는 잠자리에 누워 온갖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이 날개를 펼치면서 유튜브에서 보았던 비법과 그동안의 경험을 결합한다. 참외 세 줄기에서 3백 개의 참외를 수확한다는 영상이나 토마토를 6월부터 11월까지 수확한다는 영상, 주먹만한 감자가 열 개씩 달린다는 영상 등 온갖 동영상처럼 내가 농사를 지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착각에 맘이 흥분되고 그 벅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토요일 아침에는 7시에 일어나서 농사 소풍 갈 준비를 하자. 달걀을 두 개 삶고, 잡곡밥을 싸고, 따뜻한 물을 데워서 두 개의 보온병에 담는다. 하나는 마실 물이고 하나는 컵라면 먹을 물이다. 반찬으로 깍두기와 파김치, 삶은 머위, 쪽파 양념장을 싼다. 오전과 오후에 먹을 간식으로 초코파이 하나랑 참외 반 쪽, 그리고 하루를 풍성하게 만들어줄 막걸리 두 병을 싼다. 우선 도착하면 가장 먼저 고사리밭에 돌을 고르고 중간에 참으로 막걸리 한 잔, 점심을 먹으면서 막걸리 한 병을 마시자. 오후에는 돌 고른 밭에 두둑을 만들고 오후 참으로 막걸리 두 잔을 마시자(막걸리 한 병은 석 잔이다). 오후 일의 마무리로 퇴비를 뿌리자는 계획을 세운다. 이런저런 상상과 할 일을 생각하다 보면 더 빨리 일어나서 당장 가고 싶어지고 그 맘이 팽창하면서 잠이 깨버린다. 결국, 제시간에 제대로 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은 9시에나 겨우 일어나고 주섬주섬 소풍거리를 챙겨서 밭에 도착하면 10시 반이 넘는다. 

 

벌써 4월도 중순이 되었다. 그동안 주말마다 멧골에 와서 일했더니 제법 뿌듯함을 주는 나만의 밭이 되어간다. 고사리밭을 만들기 위해 돌을 골라서 돌둑을 쌓았고, 더불어 고사리밭도 만들어졌다(내년부턴 고사리 끊으러 산에 갈 일이 없겠다. ㅋㅋ). 고사리 종근을 두 포대 사다가 심었는데 이제 빠른 눈에서는 싹이 올라온다. 다래나무도 여덟 그루 심었는데 모두 새순이 잘 올라왔다. 그중에 한 그루는 올해 결실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산에서 꺾어와서 삽목한 은행나무나 다래도 눈이 올라와서 잘 자라고 있다. 감자도 한 상자 심었는데 하우스 안에 한 고랑, 하우스 밖에 두 고랑, 해발 550미터 송학골에 두 고랑을 심었다. 다수확과 이른 수확, 일 편리를 위해서는 따뜻한 멧골에 몰아 심는 게 좋지만, 병해충 예방과 수확의 적절한 분산을 위해 나눠 심었다. 도라지도 엄지손가락만한 뿌리가 튼실하게 자라났고, 봄이라고 새순이 앙증맞게 올라온다. 마당 텃밭에도 일찍 하우스를 만들어 씨를 뿌리고 날마다 물을 주어서 여러 가지 채소가 올라왔다. 울타리 아래에는 머위가 가장 먼저 얼굴을 비추더니 명이나물, 당귀, 곰취 순으로 싹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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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가장 많은 돈을 쓰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건 나무 심기였다. 재작년 수해로 무너져버린 골짜기에 나무가 모두 죽어서 돌밭처럼 휑했다. 무슨 나무를 어떻게 심을까 고민 끝에 편백나무를 심기로 했다. 속성수이기도 하고, 쭉쭉 길게 자란 모습과 그사이에 반양반음의 산나물이 잘 자랄 것 같았다. 지난해 작은 묘목을 서른 그루 구해서 일 년간 밭에서 가식해 관리했다. 올해 그 편백나무를 밭과 산의 경계에 모두 심었다. 일곱 그루가 죽어서 스물세 그루를 심고, 가을의 화사함을 느끼고자 주변에 단풍나무 세 그루도 심었다. 물가 옆으로는 버드나무도 두 그루 심었다. 밭 주변을 돌아가면서 감나무 여섯 그루, 체리나무 두 그루, 포도나무 두 그루, 돌배나무 두 그루, 살구나무 두 그루, 앵두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이제 더 이상 심을 자리가 없다. 그래도 자꾸 이 나무 저 나무 심고 싶은 욕심이 불끈불끈 올라와서 그 숨을 죽여야 한다.

 

오늘도 농사소풍을 하고 편백나무 숲(?)에서 점심을 먹었다. 3월엔 따뜻한 양지에 앉아 점심을 먹었는데, 4월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그럼 오뉴월엔? 내 계획은 오두막을 짓고 거기 앉아 먹는 거였는데, 역시 계획뿐이었다. 통나무를 깎아서 근사하게 지으려고 시작했던 통나무 오두막은 난관에 봉착해서 중지상태에 있다. 통나무가 너무나 무거워서 도대체 혼자는 들 수도 세울 수도 없다. 여기저기 잘라놓고 벌려놓은 기둥과 도리, 서까래가 말라서 가벼워지길 기다릴 뿐이다. (아니면, 누군가 몇 명 놀러 올 때 해치워야 한다.) 그냥 돈 좀 들여서 목공소에서 다듬어진 나무를 사다 만들 걸••• 후회막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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