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만난 사람들

by 센터 posted Ap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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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

 

 

2010년 발족한 청년유니온은 12년이 지난 2022년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고 우리의 다음을 논의하고 준비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나는 2018년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하여 2022년 임기를 마치고 청년유니온 본부 상근 비대위원으로 결합하게 되었다. 서울행을 결정하고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 이 자리를 빌려 지난 시간을 반추해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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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동자 산재 사망 사업주 처벌 촉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청년유니온)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일’의 터전은 녹록지 않다. 청년유니온이 주목하고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큰’ 일터보다는 ‘작은’ 일터에 있으며 ‘갑’보다는 ‘을’, 아니 ‘병’ 또는 ‘정’의 위치에 놓여있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그리고 그 ‘정’자와 ‘비정’자를 붙이지도 못하는 프리랜서, 플랫폼, 특수고용, 5인 미만 사업장, 초단시간 노동, 현장실습, 교육생, 취업준비 등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규칙인 ‘법률’이 존재하지만, 현실에 닿지 않는 상태에 놓여있다.

 

‘일터’는 우리가 일생을 보내는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공간으로 ‘삶의 터’이다. 하지만 ‘삶의 터’라는 단어가 보이는 따듯함은 온데간데없으며,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은 일을 하되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언제 해고되어도 어떠한 문제도 없는 사람, 언제 사고가 일어나 죽음을 마주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근로계약이 ‘인간’이라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역할과 책임, 권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이 세 가지 법안은 너무나도 상징화되어버린 죽음들 위에 만들어진 법들이다. 죽음들 위에 만들어진 법 위에서 여수의 홍정운 군은 현장실습을 하다 죽었으며, 광주 광산구의 해양에너지 회사에 다니던 청년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저임금, 임금체불, 주휴수당, 근로계약, 초창기 청년유니온의 슬로건이었던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 침해부터 감정 노동, 폭행, 성범죄, 괴롭힘, 중대재해까지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노동, 일터의 환경은 험난하기만 하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또는 제도의 틀 밖에서 여전히 ‘개인’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놓쳐버린 수많은 ‘개인’들이 떠오른다.

 

기자회견1.jpg

2020년 9월 9일,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연 광주시립극단부조리문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청년유니온)

 

2020년 9월 광주시립극단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조연출과 배우들을 만났다.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불공정계약, 보험 미가입, 계약서 미작성 등 노동인권 침해의 종합판이 그곳에 있었고 이들은 이를 고발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광주청년유니온은 광주시립극단대책위를 구성했다. 기자회견, 노동청·국가인권위원회 고발, 1인시위, 미디어 출연, 항의방문, 점거, 민사소송까지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청은 전국 최초로 프리랜서 배우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인정하였고, 광주시와 가해자들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광주시의 공식 사과문 발표로 합의 과정에 이르렀다. 시의회와 함께 예술인의 권리와 지위를 보장하는 취지의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고, 대책위 활동을 하며 주장했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됨에 따라 조례 제정을 위한 TF 구성 논의 과정 중에 있다.

 

광주시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던 이도 있었는데 청년유니온과 함께 부당해고를 다투었고 결과적으로 원직 복직이 이루어졌다. 원직으로 복직했지만, 여전히 해고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은행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면서 고객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병가가 길어지자 경기도로 부당전보를 당했던 이도 있었다. 광주의 한 학원에서는 의도적으로 일을 주지 않고, 한여름에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으며 사직을 종용받았던 이도 있었다. 광주와 화순의 피시방에서는 말도 안 되는 계약조건으로 감금과 폭력 속에서 일하고 있었던 청년들도 있었고, 파쇄기에 몸이 끼어 죽은 장애인 청년 노동자도 있었다.

 

우리는 한 개인의 삶을 구해내기 위해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의 삶을 둘러싼 구조를 읽어내며 이를 사회 문제로 대두시키고 변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한 명의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 삶을 관통하고 있는 구조를 바꾸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청년유니온을 찾는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며 이 시간이 쌓여가며 우리는 작은 곳에서의 변화를 만들어 간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고 그랬던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이 사회는 멈추었다고 하지만 이 사회의 멈춤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멈추지 않고 있었으며, 그 멈춤이 없는 가운데 여전히 그 비극적인 영화는 상영되고 있었다. 때로는 이 영화의 관객으로서 때로는 이 영화의 보조출연자로서 청년유니온은 함께했다.

 

광주에서 일어난 순간의 파편들, 이 이야기들이 광주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이들은 어떠한 종류의 ‘문제’, ‘갈등’ 또는 ‘분쟁’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자문,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연차수당, 퇴직금, 근로계약, 임금체불 등 간단한 자문부터 누군가 곁에 서서 싸워주어야만 하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한가.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지워진 사람들이 서 있다. 이름이 있으나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 시민의 권리가 박탈된 채 일상 가운데에서 수많은 폭력을 마주하고 이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시민들이 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엇인가, 과연 이들에게 노동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은 이들의 손에 잡히는 가까운 곳에 함께 서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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