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노동#운동] 영국 최대 노동조합 유나이트의 커뮤니티 조직화1)

by 센터 posted Ap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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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최대 노동조합인 ‘유나이트Unite the UNION’는 약 10년 전부터 조직구조를 개편하여 이른바 ‘유나이트 커뮤니티’ 부서와 ‘지역지부’를 설치하고 고용 관계가 없는 개인을 조합원으로 받았다. 유나이트는 산업 질서에 기초한 조직구조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지역지부는 지역 단위로 설치됐고 여기에 가입한 이들은 주로 지역 차원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인 사회운동 활동가들이었다. 유나이트 커뮤니티는 중앙조직에서 이를 관장하는 부서였다. 유나이트는 커뮤니티 조합원들을 수용함으로써 조직에 행동주의적 활력을 불어넣고, 산업 질서를 통해 접촉하기 어려운 취약노동자를 조직화하겠다는 방침을 추구했다. 그러나 목표한 바를 얼마나 성취했는지는 불명확하다. 커뮤니티 지역지부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 내긴 했지만, 지역지부의 성장은 목표만큼 이르지 못했고 산업 질서에 기초 하여 설립된 지부와 지역지부 간의 상호작용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이러한 사업의 전개 과정, 그리고 그것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관련 연구 논문을 발췌 및 요약하여 살펴본다.2)

 

비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수용한 유나이트

 

2011년 12월 유나이트는 조직의 문호를 개방해 퇴직자, 학생, 실업자 등 고용 관계가 없는 ‘비노동자non-worker’가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요컨대 이들에게 ‘커뮤니티 조합원community member ’이라는 자격을 부여하고, 국가 수준에서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혼란이 지배하는 이 시기에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전개하는 ‘커뮤니티 활동가community activists’로 육성할 것이라 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러한 유나이트 커뮤니티Unite Community 전략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집권한 신노동당 정부의 실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나 이트 조직 내부에서 형성된 것으로, 2011년 사무총장 선거에서 Len Mc- Cluskey가 당선된 후 사업계획으로 확정됐다. 

 

이 시기 유나이트가 비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수용하기로 한 결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전 세계적인 긴축 재정 추세 속에서 영국에서도 이뤄진 복지 프로그램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예산 삭감이었다. 이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악영향을 미쳤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풀뿌리 시민들의 격앙된 반응을 일으켰다. 사회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유나이트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입하고자 했다. 한편, 이 결정이 이뤄진 데는 비노동자 개인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고 지역사회 차원의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청년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작용했다. 예컨대 어느 유나이트의 간부는 면접조사에서 “정말 창피했습니다. 2010년 학 생들이 (복지삭감에 반대하며) 거리에서 시위하는 동안 우리는 영국노총Trade  Union Congress 총회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의사록을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성찰하는 가운데 우리가 학생운동과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이 생겨났습니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4.항의시위.jpg

Unite the UNION이 스포츠 다이렉트 물류창고 앞에서 열은 시위

 

유나이트 커뮤니티 지역지부와 업종지부

 

커뮤니티 조합원이 내는 조합비는 2018년 당시 일주일에 50펜스(2021년 10월 3일 기준 약 8백 원)로 의도적으로 낮게 책정됐다. 또한, 커뮤니티 조합원이 50명 이상 되는 지역에서는 지역지부local branch를 구성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지역지부는 중앙으로부터 활동비로 일주일에 약 500파운드(2021 년 10월 3일 기준 약 80만 원)를 받는다. 지역지부에 속한 커뮤니티 조합원들은 토론을 통해 활동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했다. 대부분은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취약계층을 대변해 재정 긴축으로 인한 복지 삭감에 항의하고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주택 공급,  윤리적 조달, 생활임금 캠페인, 가정폭력 반대, 푸드뱅크 확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의 이슈와 관련된 활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5개 커뮤니티 지원센터가 설립되어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교육훈련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커뮤니티 지역지부는 지역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 문제에도 개입했다. 예컨대 커뮤니티 조합원들은 ‘0시간 계약’을 일삼는 레스토랑 체인을 표적으로 삼아 ‘Fair Tips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한, 0시간 계약을 인사 관리 방침 중 하나로 활용했던 대기업 Sports Direct를 대상으로 전국 40개 이상 매장에서 항의 캠페인을 벌여 이 회사의 설립자가 의회에 출석해 조사를 받도록 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커뮤니티 조합원들은 파업투쟁 연대활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유나이트에서 커뮤니티 지역지부와 산업적 조직 질서 사이 연결은 전략적 방침에 따라 의도적으로 권장됐다. 이에 따라 기존 하부단위 조직인 업종지부industrial branches 중 50개 이상이 새로 만들어진 커뮤니티 지역지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상당수 업종지부 조합원들에게 이러한 지원은 자신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일종의 보험 가입으로 여겨졌다. 그런 한편으로, 이러한 권고와 노력에도 이 두 가지 질서는 섞이지 않았다. 현실에서 지역지부와 업종지부 조합원들은 뚜렷하게 분리됐다. 이들 사이에는 접점이나 상호작용이  없었다. 이들을 관리하는 조직구조도 분리됐다. 예컨대 ‘조직화 사업본부the  Organizing Department’는 사업장 단위에 초점을 맞추고 ‘유나이트 커뮤니티’는 커뮤니티에만 초점을 맞추며, 두 부서는 서로 관여하거나 협력하지 않았다. 나아가 두 부서의 목표 관리와 운영 책임은 각기 다른 사무부총장들assistant general  secretaries 이 지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유나이트 커뮤니티는 지속해서 성장했다. 출범 당시 10개  지역지부에 각각 한 명씩 조직가가 배치돼 있었는데, 2015년 말에는 106개 지역지부/집단에 1만5천 명 이상이 커뮤니티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었다. 그럼에도 이는 타산적 측면에서 추산된 ‘비용 중립적’ 커뮤니티 조합원 규모 2만 5천 명에는 못 미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지부는 여론의 주목을 받은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했고, 중요한 사회구조적 변화를 실질적으로 견인했다. 이는 비용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성과였다. 또한, 이는 유나이트의 정체성에 있어서 변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2011년 이전 유나이트는 일반적으로  Hyman(2001)이 제시한 ‘계급/시장/사회’의 삼각형에서 ‘시장/계급’ 사이에 놓인 조직으로 평가됐다. ‘사회’와는 멀리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이 조직의 정체성은 ‘계급/사회’ 축의 방향으로 일정하게 이동했다. 이를 주도한 커뮤니티 활동가들은 ‘138만 유나이트’의 가족이 된 것이 자신들에게도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고 평가했다. 대규모 노동조합의 일원이 됨으로써 더  많은 자원과 시설을 활용할 수 있었고, 사회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더욱 자신감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나이트 커뮤니티, 노동조합 정체성의 의미

 

유나이트 커뮤니티 사례는 비근로자를 조합원으로 포함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정체성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본 사례에 대한 검토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평가와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커뮤니티지부 조합원은 업종지부 조합원과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가  달랐다. 일반적으로 사업장 질서에 기초해 가입한 업종지부 조합원은 노동조합을 직장 내 문제 해결과 노동조건,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일종의 ‘보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 노조와 관계는 일종의 ‘거래 관계’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긴급한 위기 상황과 연결된 것이 아니면  노조 활동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보이거나 참여하지 않고, 마치 보험사 직원에게 그러하듯 선출된 지도부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다. 이들에게 노조의 의미는 불명확할 수 있다. 그러나 커뮤니티 조합원들은 정치적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운동의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목적과 활동에 대해서 의미를 구성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노조의 목표와 활동에 대해 명확한 상을 갖고 있다. 

 

둘째, 커뮤니티 조합원들이 추진하는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사회 운동적 활동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전통적인 노사관계 구조의 제약과 충돌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커뮤니티 지역지부의 활동은 법 제도에 기초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축소된 집단적 노동관계의 경계를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도부는 유나이트 커뮤니티 전략 실행을 통해 계급적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노조주의를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말로만 그치는 경향이 있다. 유나이트의 관료주의는 커뮤니티 기반의 조직질서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 예컨대 유나이트 규약은 “커뮤니티 조합원은 노동조합에서 어떠한 직위도 획득할 자격이 없다. 또한,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지부/집단을 제외하고 다른 조직구조에 참여할 수 없다.”라고 정하고 있다. 또한, 커뮤니티 조합원은 취업하면 권한을 상실한다. 업종지부와 커뮤니티지부 이중 멤버십은 허용되지 않는다.

 

셋째, 유나이트 커뮤니티 전략의 기획 과정에서 업종지부 조합원과 지역지부 조합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이해관계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 내에서 임원, 활동가, 직원들의 갈등과 충돌이 어떻게 조정되는가는 그 조직의 성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중심으로 하는 진솔한 의사소통에 기초하여  내부 협력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유나이트 커뮤니티 전략에 대해서 그러한 소통과 통합의 과정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나이트 총회에서는 유나이트 커뮤니티 전략에 관한 내용이 보고되었지만, 이와 관련된 일상적인 조직학습이 다양한 층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노동조합의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전략적 지향과 새롭게 도입된 전략적 지향을 통합하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의 의지와 섬세한 논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성명서를 내고 조직의 지향을 표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교육훈련에 기초한 지속적인 내부 혁신과 실질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 ∙ ∙

1) 이 글은 다음에서 일부를 수정 및 요약한 것이다. 이주환(2021), 지역 노동운동 발전 전략 검토 : 커 뮤니티 노조주의 중심, 박용철·김태현·이주환(2021),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실현을 위한 지역 본부 활성화 방안, 민주노동연구원.

2) 이하에서 별도 인용 표시 없는 내용은 다음에서 발췌했다. Holgate, J. (2021). Trade unions in  the community: Building broad spaces of solidarity. Economic and Industrial Democ- racy, 42(2), 22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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