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꺼진 이후의 반동, K-트럼프 리스크1)

by 센터 posted Apr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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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조만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 등 여러모로 불안한 시작이다. 그들 스스로 잘해서라기보다 8할(?)은 상대방이 헛발질한 덕분이다. 보수 쪽의 무슨 전향적 혁신 같은 것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낡은 것이 죽지 않고, 늘어놓는 레퍼토리도 별반 변함없이 다시 찾아 왔다고 하면 좀 심한가? 하지만 경쟁상대와 0.73% 차이라 해도 국민의 다수가 선택한 건 분명하다.

 

이로써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삼인방의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 뜨거운 아스팔트 촛불항쟁의 힘으로 기회를 얻었던 문재인 ‘촛불정부’의 시간은 허망하게 퇴장하고 윤석열이 이끄는 보수 정부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분단체제 아래 중도와 보수라는 거대양당의 게임, 그들끼리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가운데 제법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판 진영정치 사이클은 이번 시간에도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대선 이전에 이미 문재인 정부는 촛불을 꿀꺽 삼켜버렸다. 촛불이 꺼지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텅 빈 메아리만 남 아있는 씁쓸한 종말과 불안한 새 정치적 순환의 시작과 마주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승자와 패자 모두 -물론 내용은 다르다- 묵직한 숙제를 받았다. 그들은 대선 이후 숙제를 잘하고 있나?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잘하려고 하나? 그들이 하는 빈말을 우리는 또 믿어도 될까?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심판이 기다린다. 하지만 정치는 선거 이상의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어느 때보다 신뢰가 중요해졌다. 선거가 아니더라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더 바라볼 게 없다. 패자든 승자든 숙제를, 약속을 여하히 잘 이행하느냐, 이를 통해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다음도 기약할 수 있고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이른바 ‘국민통합’의 길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검찰개혁 문제를 둘러 싸고 강 대 강으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을 보노라면 초장부터 뭔가 심하게 꼬인다는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중도권력의 기득권화, 촛불 삼킨 촛불 정부

 

오늘날 세계정치에서 중도권력의 기득권화 현상(토마 피케티는 ‘브라만화’ 라고 불렀다)은 널리 퍼져있다.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것도 다분히 여기에 연유한다. 패권국으로 글로벌리즘을 주도해왔던 미국에서 반세계화 자국 우선주의에 인종 차별과 혐오 정치를 뒤섞은 깃발로 트럼프가 다수의 지지를 얻었던 것도 기득권 민주당이 밀고 갔던 맹목적 세계화, 월가 및 대기업, 빅테크와 결탁한 신자유주의 기조가 낳은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 불로소득 문제 앞에 속수무책이 되었던 결과다. 어떤 논자는 클린턴, 부시, 오바마의 경제 독트린은 낙수효과 경제학을 신봉하는 네오리버럴이라는 점에서 사실 가족 친화성을 가지며 트럼프는 반세계화 보호주의, 블루칼라 노동자(백인) 일자리 만들기, 재정 건전성에서 벗어난 돈 풀기로 이들과 결을 달리했다고 지적한다. 꽤 일리 있는 말이다. 바이든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민주당 세력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뉴딜의 재창조’ 노선으로 불평등 및 불로소득 문제, 코로나 방역, 그린뉴딜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려 했고, 또 집권 후 트럼프의 정치가 워낙 저질이고 무능했던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유령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한국에서 중도자유주의 성향의 문재인 민주당 정부가 기득권화해 촛불 개혁 기운이 꺼지고 그 반동으로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에 이른 것은 기본선에서 미국 민주당 세력이 트럼프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던 것과 돌아가는 흐름이 많이 닮았다. 물론 중요한 차이도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는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판 뉴딜을 내세우고 루스벨트를 들먹이기도 했지만 정작 뉴딜형 다수자연합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고민은 없었다. 촛불 연정은 일찍 기각되었고 말기에는 국민의힘과 다투어 위성정당까지 만드는 꼼수를 서슴지 않았다. 

둘째, 문재인 집권기를 통해 한국은 뚜렷하게 자산소유자 지배사회로 변모했다. 어설픈 소득주도성장의 기조는 빠르게 꺾이고 불로소득성장 및 낙수효과성장으로 되돌아갔다. 자산 불평등이 심화하고 불로소득이 번창하는 사회,  대중들이 뿌리 뽑혀 삶의 불안에 내몰리고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상황이 곧 우파 포퓰리즘 창궐의 온상이다. 

셋째, 불평등의 벽에 내로남불식 위선이 포개졌다. 불평등 문제보다 오히려 공정문제가 더 중심 화두로 부상하고 여론전에서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국민의힘이 가져갔다. 그들 역시 심하게 지저분한데도 말이다. 

넷째,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기재부 주도의 재정 건전성 신화에 포획되었다. 대선 국면에서도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문제는 오히려 윤석열 후보가 기선을 잡았다(취임 후 100일 내 50조 원 투입). 

다섯째, 남 탓하거나 ‘다음에’라며 미루는 건 민주당의 큰 장기였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 버릇은 남주지 않고 있다.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확실히 실천하겠다며 당론으로 채택했던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은 이번에도 ‘위장 탈당’ 꼼수까지 동원하는 검수완박 검찰개혁 우선에 밀려나 ‘다음에’로 가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윤석열 정부 순항의 세 가지 조건   

 

그렇다면 촛불이 꺼진 이후 새로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는 잘 해낼까. 사실 보수 정부도 하기 나름이다. 멀리 보면서 무거운 역사적 책임감으로 유능함을 발휘하면 순항할 수도 있다. 자기 편(그 핵심부에 재벌 대기업과 불로소득 계층 동맹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대의를 취하면 진보 정부가 못하는 것까지 할 가능성조차 있다. 모름지기 정치에는 ‘내 편 정치’를 넘어 죽어야 사는 이치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 오래갈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0.73%의 차이, 정권교체 열망이 매우 높았는데도 역대 가장 적은 표차로 승리했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야 한다. 상당수 표가 결코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고 민주당이 싫어서, 문재인이 싫어서 찍은 것이다.  삐끗하면 지지자들이 도망간다. 오만과 독선, 거기에 동거하는 특권은 새 정부 최대의 적이다. 

 

둘째, 공공성 추구의 기본선을 지켜야 한다. 《대통령의 자격》을 쓴 윤여준은 이런 말을 했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공성이라는 가치이기도 하다. 국가는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한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다. 국가는 이긴 자의 것 ‘내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국가, 모두의 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식이든 공공의 권력을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 정치란 피아彼我를,  아방我方 타방他方을 갈라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갈등을 조정하고 분열을 통합하는 것 또한 정치의 본령이다. 말로만 국민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쥔 다음에는 정치의 통합적 측면이 더 중요하게 다가올 수 있다. 새 정부는 대선 기간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고 국민통합 정부가 되겠다고 했으며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가 취임 슬로건이라고 들었다. 이 말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오만과 독선을 버려야 하고 특권을 멀리 해야 한다. 보수 정부의 전매특허인 ‘시장규율’을 중시한다고 해도 전반적 국정 운영이 지배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책임을 다해 야 한다. 이를 통해 실제로 국민통합 정부로서 나름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셋째,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문재인 정부 아래 빚어졌던 내로남불식 위선을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렇다 할 보수의 혁신이 없었음에도 윤석열 정부가 권력을 얻게 된 것은 이 문제와 관련된 문재인 정부의 과오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도 자녀 특혜 및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된 정호영 복지부장관 후보 등 흠결이 심한 각료 후보자들에 대해 무책임하게 청문회에서 지켜보자는 식으로 버틴다? 눈이 멀어 한 치 앞도 못 보고 자기 발등을 찍는 꼴이 아닌가.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권력의 사유화와 국정농단으로 몰락한 박근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촛불로 탄핵당하고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 한번 한 적 없는 박근혜를 만나 사과나 하고 다니는 것은 새 정부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피플 없는 포퓰리즘, 갈라치기+줄푸세?

 

새 정권 출범 시점이라 부득이하게 윤석열 정부가 길게 가는 방향에 대해 몇 마디를 했지만, 현실로 돌아와 윤석열은 ‘K-트럼프’라는 말을 듣는다. 혐오와 차별로 갈라치기,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야만적으로, ‘반문명적으로’ 고립화시키기, 그리고 감세·규제 완화·노동시장 유연화 강행과 저항 대중에 법 질서(규율) 세우기가 사회경제정책의 핵심적 기조로 읽힌다. 고삐 풀린 ‘자유 시장’이 신권위주의적 국가 통제와 결합해 가동될 모양새다. 더구나 윤석열은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주거·부동산의 경우 투기 공화국을 가속화시킬 정책으로 임대차법 폐지·축소 및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활성화,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재건축·재개발 사업 규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세금 깎아주기 정책으로 부동산 공시가격 2020년 수준으로의 환원, 공정시장가액비율 95% 수준으로 동결, 1주택자 세율을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인하, 장기보유자에 대해 연령 상관없이 매각· 상속 시점까지 납부이연 허용, 세 부담 증가 상한율 인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배제 등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다. 

 

청와대 직제도 슬림화된다. 청와대 정책실장직을 없애는 등 경제정책은 처음부터 기재부 주도로 끌고 가려고 확실히 판짜기를 하고 있다. 윤석열은 전두환을 몹시 칭찬한 바 있는데, “국정을 시스템적으로 운영하고 유능한 인재를 잘 기용했다”면서 김재익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발탁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슬림 청와대’ 방식이라면 기재부에 완전히 끌려가는 식이 될 모양이니 전두환보다 훨씬 못한 짓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로 갈라치기, 한층 가열한 불로소득성장과 대기업 주도 낙수효과성장의 기조, ‘작은 정부’ 및 ‘슬림 청와대’ 기치로 새 정부의 핵심가치인 공정과 상식을 세우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 ‘새로운 국민의 나라’(!)가 어떻게 가능할까 사람들은 크게 불안해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국판 트럼프가 우파 포퓰리즘으로서 심각한 약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포퓰리즘이란 절차는 거추장스럽게 여기면서 ‘피플’에 다가가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원조 트럼프의 경우, 알고 보면 우파 포퓰리스트답게 대중에게 실제로 어필하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반세계화 자국시장 보호주의와 일자리를 잃은 블루칼라 노동자 대중에게 조준된 일자리 창출하기, 위기시대 재정 건전성 족쇄를 벗어난 확장 재정정책 시행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최근 프랑스 대선에서도 우파 포퓰리즘도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극우 성향 르펜이 높은 지지율을 얻었는데,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는 등 극우 이미지를 탈색하는 정책 및 친서민, 친노동자 정책을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고 들린다. 르펜은 고속도로 국유화 공약을 내걸었다. 

 

반면에 비슷한 성향의 우파 포퓰리스트라지만 K-트럼프에게서는 원조 트럼프나 르펜에게 있는 피플 친화적인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가 원조 격인 신자유주의 기조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기)’는 있으나 ‘피플’이 없다. 중대한 결함이다. 한마디로 너무 올드하다. ‘피플이 없는 포퓰리즘’은 오늘날 새로운 대안 우파가 되기에는 능력 미달, 더 심하게 말하면 실격이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 시기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한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운운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MB 정부도 후반기에 ‘중도실용’이라는 것을 꺼내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래도 K-방역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무슨 수로 대중의 실제 삶의 문제에서 그들의 호응을 얻겠다는 걸까? 이 정부가 보이는 이념적 잡탕기조의 정체는 뭘까?

 

새 정부 관료들의 실력은?

 

역대 정부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윤석열 정부를 이끌 경제 관료들의 실력이 문제가 된다. 새 정부의 내각 수장으로 한덕수, 추경호가 각각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실력과 전문성, ‘경륜’을 갖춘 인물이라 발탁되었다고 한다. 비서실장 후보자조차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하지만 발탁 이유는 그럴싸해도 사실 올드한 사람들이다. 우선 총리 및 부총리 후보는 둘 다 론스타 사태 및 다른 의혹에 연루되어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한덕수 후보는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4년여간 18억 원의 고문료를 받은 인물이다. 사실상 일급 로비스트로 일한 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내건 새 정부 총리직을 수행하겠다는 꼴이다. 

 

정책 지향은 어떤가. 한덕수 후보는 “엄청난 확장재정에 위기의식을 느낀다.”라며 시종 재정 건전성 기조를 강조했다. 그리고 최저임금이 올라 기업에 부담을 줄까 봐 걱정을 많이 한다. 그리고 추경호 후보는 “기업 모래주머니 규제를 벗겨주겠다.”라면서 규제 완화와 친기업 이윤주도성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그는 다주택자 규제 및 갭투자 규제,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반대한 바 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와 결합한 관료들은 실력을 어떻게 발휘할까? 처음부터 슬림 청와대 아래 확실히 기재부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재정 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며(비서실장까지 재정 건전성 수호 합창에 가세한다) 규제 완화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듯한 기세의 인물들이 경제사령탑을 차지한 상황에서 윤석열이 약속한 50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은 어떤 결말을 볼지, 나아가 금리 인상과 물가 인상 파고가 밀려오는 전환기에 물가, 집값, 가계 빚의 ‘3대 리스크’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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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의 축약본은 프레시안(2022년 4월 18일)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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