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공제] 실패한 노동운동의 재구축 전략, 노동공제 운동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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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국 노동운동은 실패했고 계속 실패하려고 한다

 

불경스럽게도 제목에다 ‘실패한 노동운동’이라 붙였다. 그렇다. 한국 노동운동은 실패했다. 노동해방 혁명 전략의 실패 때문이 아니다. 체제 전복 전략은 세계의 노동운동이 모두 실패했다. 성공한 것처럼 여겨졌던 러시아와 동유럽 노동운동도 결국 실패했다. 전략의 근본적 결함이든 집행 과정의 오류든 혁명 전략을 채택한 세계 모든 노동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실패 규정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세계 노동운동의 사례를 살펴보면, 노동운동이 혁명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는 완화할 수 있다. 더 심화하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에서 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노동운동은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저지하기는커녕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조차 외면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은 갈수록 평등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다. 그래서다. 한국 노동운동은 실패했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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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은 2017년 기준 상위 10% 소득 비중을 분석한 자료다. 그해 대한민국 전체 소득에서 최상위 1%(P100-99)가 차지한 소득은 15.26%였다. 1%가 15배의 소득을 점유하고 있다. 많다. 그 구간에는 노동운동이 비판하는 재벌 등 상층 자본가 계급이 속해 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1대99 불평등을 폭로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노동운동은 여기서 멈춰 있다. 다시 보자. 상위 1% 소득 15.26%를 모조리 몰수해서 하위 계층에게 넘겼다고치자. 그러고 더 보자. 상위 9%(p99-90)소득은 35.39%다. 평균보다 4배 소득이다. 그런데 한국 노동운동은 이 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구간에 노동자가 있기때문이다. 노동조합 주력인 양 노총 조합원상당수가 포함돼 있어서다. 노동운동이 10대90 불평등을 외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노동운동에 묻는다. 이 정도 불평등은 별것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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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박사가 해마다 발표하는 통계다. 통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격차가 아니다. 노동자끼리의 월 임금 격차다. 2019년 격차는 5.39배였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 위기가 밑바닥 노동으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급기야 6.25배까지 벌어졌다. 다시 얘기하는데 이것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격차가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에 다시 묻는다. 이 만큼의 격차는 별것 아니란 말인가.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은 〈저임금·임금 격차에 대한 노동자 운동의 접근 방향〉 보고서에서 2017년 국민총소득을 취업자 전체에게 똑같이 분배한다고 가정했을 때 1인당 평균 5천200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상위 10%가 지금처럼 계속 임금을 인상하면 하위 50% 노동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평균 소득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점을 본체만체하는 노동운동에 또 묻는다. 하위 50% 노동자는 그렇게 살다 죽으란 말인가.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재벌 사내유보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지 계산해 봤다. 사내유보금은 투자에 들어간 비용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서 전액 현금으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무식하게 계산했다. 2020년 기준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1천45조1천301억 원이었다. 그것을 연 소득 3천만 원 이하로 추산되는 1천만 노동자에게 골고루 나누니까 1인당 평균 1억여 원이 나왔다. 그것으로 노동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2년에서 3년이었다. 사내유보금으로 노동자의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근본 대책이 아니었다. 재벌 주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더더욱 터무니없었다. 2020년 기준 10대 재벌 대주주 일가의 주식 총액은 70조 원이었다. 사내유보금 1천조와 비교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100대 재벌로 범위를 넓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어떤 이는 한가하게 그렇다, 미안하다고 한다. 한가하게 한다는 소리가 사회주의 혁명하면 된다고 한다. 혁명 주력이라 믿었던 노동자는 상위 10%에 진입해서 체제를 바꿀, 아니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정도의 투쟁도 할 생각이 없는데 도대체 누구와 혁명을 한다는 말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다. 한국 노동운동은 실패했고, 10대90 불평등을 지금처럼 계속 외면하는 상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는 이유다. 하위 50%가 주체로 서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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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3]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다. 양대 노총이 발표하는 조합원 숫자보다 축소되었다는 점, 특수고용 노동자가 빠졌다는 점을 한계로 보더라도 흐름을 읽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 100인 미만을 계산해 보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77.6%인데, 조합원 비율은 0.48%에 불과하다. 한국 노동운동 실패의 뼈아픈 또 한 사례다.

 

전통적 방식의 조직화 전략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한국 노동운동은 이들을 조직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했고 지금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했다. 전통적 방식은 사업장별로 조직해서 임금·고용·사내복지 등의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또 전통적 방식은 지불 능력이 있는 재벌·정부·지자체 등에 직접 연결된 하청 노동자를 조직해서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고 조합원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그러나 100인 미만 사업장 생태계, 또 노동자 생태계는 그런 조건이 안 된다. 첫째, 사업 자체가 영세해서 노조를 만들어도 얻을 것이 거의 없는 영세 노동이다. 둘째, 규모가 작다 보니 사업주와 노동자가 친밀할 수밖에 없는 대면 노동이다. 셋째, 좀 더나은 노동 조건을 찾아 수시로 사업장을 옮겨 다니는 이동 노동이다. 넷째, 플랫폼이 대표적인데 집단에 대한 소속감 없이 혼자일하는 개별 노동이다. 다섯째, 낮은 소득으로 인해 하나의 직업에 몰두하지 않고 이일 저 일 하는 다중 노동이다. 이들을 전통적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안이 발생했을 때 잠시 묶어둘 수 있지만, 현안이 끝나면 대부분 노조에서 탈퇴한다. 이들의 노조 가입률이 1%를 넘지 못하는 핵심 이유다.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노조를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탄압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것만큼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노조할 권리 이전에 노조할 동인이다. 그것은 뭔가의 직접적 혜택이다. 그래야 노조에 가입하고 또 남아 있는 것이다.

 

노동공제 운동을 구상하고 추진한 배경이다. 금융, 보험, 보육, 교육, 여행, 주거, 일자리, 의료, 소비, 상조, 노후, 법률 등 일상의 삶과 관련된 온갖 품목·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해서 실제 혜택을 주고 계속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 노동공제 구상이다. 그것을 조직화의 동인으로 만드는 것이 노동공제 운동의 의미다. 그것을 통해 그들을 사회의 주체로 세우려는 전략이다. 그래야 노동운동도 바뀌고 사회도 바뀐다는 문제의식이다. 노동공제 운동은 실패한 노동운동의 재구축 전략이다.

 

노동운동은 10대90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사회구성원 절대다수의 기본적 의식주조차 보장되지 않을 만큼 1대99 불평등은 사회 문제의 핵심 요소였다. 한때 세계의 절반이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한 배경이었다. 그렇지만 물적 토대가 성장하면서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의식주 및 최소한의 교육·의료 등이 보장되면서 사회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불평등은 10대90이다. 자존감이라는 인간의 특성 때문이다.

 

절대적 차원의 삶이 보장되면, 인간의 계급계층 관계는 사회체제라는 거시 범주에서 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정·골목·장터·직장·거리 등에서 체감되는 일상의 미시 범주에서 발현된다. 즉 일상에서의 대다수 인간은 저 멀리 있어서 비교할 수도 없는 최상위 1%의 부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옆에 있어서 늘 비교 대상이 되는 이웃과의 차이 때문에 더 화가 나고 절망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신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하는데, 자신에게만 없다고 느끼는 몇십만 원, 몇백만 원에 절망하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자신과 가족의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현실이 답답한 것이다.

 

전쟁·재난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인간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으나, 일상에서의 인간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정도로 좁은 존재다. 차를 몰다가 발생하는 사소한 마찰로 주먹 다툼 벌이고 사법 심판을 자청하는 행동, 별로 많지도 않은 상속 문제로 파탄 나는 가족 관계, 돈 몇 푼 갚았느니 안 갚았느니 단절되는 친구 관계, 누군가의 사소한 비난에 밤잠을 설치는 모습, 술값 5만 원은 아깝지 않고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일회용 라이터값은 아깝다는 심리 등 인간 세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는 현상이다. 이렇듯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인간의 한 특징은 계급계층 관계에서도 발현된다.

 

10대90 불평등 심화는 사회의 연대 및 계급의 단결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10대90 불평등 심화는 노동자와 사회구성원 전반에 추격과 경쟁 심리를 확산시킨다. 추격에서 낙오한 구성원에게는 절망을 강요한다. 10대90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 노동운동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무너진 근본 원인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1대99 불평등 못지않게 10대90 불평등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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