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감정노동센터 3년의 의미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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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센터 이사,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소장

 

 

뜨거운 계절이다. 코로나 때문에 더 뜨겁고 힘겹다. 의료진과 관계자의 고군분투에 절로 머리를 숙인다. 땀에 젖은 장갑 안에서 퉁퉁 불어난 손, 방호복을 입고 중증 치매 할머니와 화투놀이를 하는 간호사의 사진에서 뭉클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글을 시작하며 코로나 최일선에 계시는 분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들도 코로나로 인해 가혹한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여행업의 급격한 위축에 더해 몰염치한 경영진 때문에 일터를 떠나야 했던 항공사의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비대면 분야의 수요 폭증으로 업무가 더욱 가중된 콜센터와 택배, 배달 노동자, 비대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 돌봄 노동자, 식당이나 숙박시설, 매장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 역시 코로나로 인해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원금 처리와 방역에 올인하고 있는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동자 역시 다양한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감정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갑질 사연은 거의 매일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세상 답답하고 속상한 이야기만 들으니 일상이 덜 즐겁고 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예측하기 어려웠던 재난은 약한 곳을 더욱 쉽고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충분하지 못한 보호 체계와 사회안전망은 감정 노동자를 탄탄히 막아주지 못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이하 감정노동센터)가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였는지 자평하기 어렵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위중한 시기에 감정 노동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를 수탁한 지 3년이 빠르게 지났고 그간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새로운 3년을 이어가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적당한 것 같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살피고, 한계와 대안을 찾을 시점 말이다. 그리고 과감하게 바꿀 부분과 잘 다듬어서 발전시킬 부분을 신중히 구분해내야 한다.

 

필자는 과분하게도 지난 3년간 감정노동센터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받아 활동하면서 많은 분과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여기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 20년간 묵묵히 다져온 다양한 네트워크, 그리고 노동 현장과 함께한 연대의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경험도 아는 것도 부족해서 늘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었지만 누군가가 필요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뿅, 짠, 빠람~’ 하며 귀인들이 나타났다. 고마운 일은 내부에서도 그랬다. 지치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서 상근자들이 센터를 떠날 때도 기적 같은 ‘뿅, 짠, 빠람’은 계속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나무와 같은 동료들이 어깨를 걸고 받쳐주었다.

 

서울시가 설립부터 사업 수행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크고 작은 일들은 발생하기 마련인지라 늘 고민하며 헤쳐나가야만 했다. 뜬금없이 요청되는 자료들, 앞뒤 맥락 없는 예산 조정이 그랬고 느닷없이 나타난 코로나가 그랬다. 선거마다 중단해야 하는 사업들을 선거 이후에 빠르게 처리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3년 중 선거나 다른 이슈 없이 온전히 사업을 하며 1년을 보낸 시기는 2019년 딱 한 해뿐이었다. 일에 대한 욕심과 책임이 강한 센터 동료들이 아쉬워하고 자책할 때마다 “여러분들이 잘못한 게 아니니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순간들이었다.

 

아마 우리와 유사한 많은 위탁기관이 이런 과정들을 거쳐왔을 것이다. 분명히 센터를 시작하는 첫 마음에 새롭고 의미 있는 뜻을 새기며 일을 시작했지만 밀려오는 불합리 속에 이리 깎이고 저리 채이며 많은 생채기가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가 중요해졌다. 앞으로의 3년은 이 고민을 풀어가기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모두 그 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야만 한다.

 

감정노동센터 3년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숫자로 보이는 성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 주체가 센터를 만들어 온 이야기와 사업을 갖추게 되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감정노동센터 사례는 서울시와 의회, 그리고 외부 전문가와 현장 노동자가 함께 의기투합해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모델이면서 매우 드문 사건(?)이었다. 많은 지자체가 감정노동조례를 만들었지만, 이후의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서울시는 조례 제정 후 빠른 속도로 종합계획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해서 사업을 일구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라는 토양 속에서 1년간 시범 운영을 하며 조직을 운영할 때 취해야 할 것과 쇄신해야 할 것들을 구분해 낼 수 있었던 점도 큰 장점이었다. 현장과 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이 거름 역할을 했고, 일을 ‘찾아서’ 할 줄 아는 동료들이 일꾼 역할을 잘 수행한 것까지 여러 박자가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센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지자체 담당 부서와 의회, 연구기관 등이 센터로 찾아와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갔다. 민간 사업장의 안전관리 부서도 찾아와 방법을 고민하여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일본 보건 분야 산별 노동조합 초청으로 대규모 포럼에 참석해 서울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고, 방송과 신문, 심지어 대학교 학보사까지 감정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해가기도 했다. 우리가 만든 여러 홍보물을 요청하는 사업장이 날로 늘어가고 있으며, 용기 내어 심리상담을 받겠다고 결심하고 끝까지 완주하는 노동자가 많아졌다. 올해 상담 예산이 5월에 바닥날 정도로 관심과 참여가 높았다.

 

이어서 전개될 3년은 우리가 경험한 시행착오를 다른 지자체나 사업장들이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잘 정리해서 알리고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는 경험이 풍부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통해 충분히 실현 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로 감정노동에 관한 치밀한 접근을 해야 한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치유하는 일, 제도를 수립하고 매뉴얼을 만드는 일 외에 사업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감정노동 직무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에 관한 고민과 함께 감정 노동자에 대한 평가 체계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로 부상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업을 편성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감정노동의 문제보다 더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상식 수준에서 해결하기 어렵다. 관행처럼 내려온 나쁜 인식에서 비롯되는 문제임과 동시에 조직의 문화 전반을 바꿔야 하는 일이고, 몇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근로기준법과 서울시 조례가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새롭게 마련된 법적 근거를 토대로 다양한 정책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명히 해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3년 전 다양한 주체들이 감정노동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일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처럼 몸이 기억하는 대로 시작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때도 그랬듯이 어디선가 귀인들이 ‘뿅, 짠, 빠람~’하고 나타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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