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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안 보이면 흐릿해진다. 기억은 시간을 이기지 못해 풍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길에 나와 싸우는 사람들은 뭐라도 한다. 굶고 기고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잊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농성 천막이 있다. 거기, 꿈적 않는 사람이 있다. 한때 굶고 땅을 기고 점거 농성을 벌였던 그들은 오늘 또 새로운 농성 날짜 팻말을 건다. 455일, 코로나 위기와 함께 시작된 싸움이 길다. 언젠가 구호 새겨 그 앞에 걸어둔 일회용 방역 마스크엔 매연이 덕지덕지 붙어 잿빛이다. 정년이 진작에 지났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한다. 부당해서라고, 또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잘못한 게 없으니 그렇다고 했다. 노조 만들어 싸운 죄가 다만 중했다. 유명 로펌을 앞세운 회사는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큰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노위와 중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에도 행정소송이 뒤따랐다. 얼마 전 감옥에서 풀려난 어느 재벌 얘기를 하면서는 험한 소리가 따라붙었다. 개돼지 신세를 한탄했다. 안 해본 걸 꼽기가 어려운 이들은 이제 포기 않고 버티기를 하는 중이다. 낡은 천막 안에 걸어둔 달력에는 연대투쟁 일정이 빼곡하다. 행정소송 선고일도 거기 보인다. 인스턴트 커피를 찬물에 풀어 냉커피를 만든다. 양재동 법원 앞 기자회견에 갈 준비를 한다. 마스크를 고쳐 쓴다. 원래는 붉었을 농성 두 글자가 물이 다 빠져 이제는 누렇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의 농성 천막이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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