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80년대생의 낙관적 자기 선언 <추월의 시대>

by 센터 posted Feb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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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의 시대

김시우 외 5명 / 메디치미디어

 

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선진국을 추격해 온 대한민국이 이젠 선진국들을 추월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80년대생들의 낙관과 자부심이 넘치는 책이다. 흙수저로 살아가는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인 헬조선에서 각종 부정적 신조어가 쏟아져 왔다. 수축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저성장기에 들어선 자본주의에 코로나19로 재난까지 겹친 지금, 이렇게 낙관적인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어떤 강력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80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위대한 성취로 수용하는 세대다. 우파는 선진국을 따라잡으려 국가와 재벌의 덩치를 불렸고, 좌파는 국가와 재벌에 대응하려 덩치를 불려 왔다. 이젠 그 양쪽을 넘어설 세대가 바로 자신들이라며 긍정한다. 상위 1% 역량은 미국이 우위고, 10% 역량은 일본이 우위겠지만 시민 20~30%를 비교하면 한국이 앞선다. 코로나 재난 앞에서 어느 나라보다 인포데믹infodemic이 덜한 한국 시민 역량을 믿는다.

 

한국인은 왜 정신 바짝 차리고 살까. 사계절이 변하는 기후 조건과 강대국 사이의 지정학적 지옥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거기에 조선시대 성리학의 주지주의까지 작용했다. 시민이 전문가를 잘 믿지 않는 것은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자질이다. 매일 김용균과 매일 세월호를 만들어 엄마들에겐 ‘굉장한 슬픔’ 아빠들에겐 ‘굉장한 죄책감’을 일으킨 빨리빨리 문화를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피드백의 문제로 이해한다. 잘난 엘리트들이 민중을 개, 돼지로 여기는 것보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면서도 그걸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중요한 것은 ‘먹고사니즘’이다. 굶으면 죽던 시대를 지나 근대가 되면서 먹고사는 문제와 생명이 분리되었다. 이젠 사회적 참사자 문제를 지나 산업재해자 문제가 떠오른다. 정부는 이런 문제 앞에 주춤댄다.

 

뉴라이트는 근현대사를 대륙 문명과 해양 문명의 대립으로 파악했다. 중국-유교-대륙농경과 서유럽-기독교-해양상업이 대립해왔다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 보수주의를 부흥시키기 위해 꽤 큰 규모로 논리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단순해졌고 보수는 약해졌다. 조선은 중앙집권제나 관료제를 유럽보다 빨리 발전시켰다. 시장경제는 서양 봉건제가 유리해 서양이 산업화에 앞섰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빠르게 성공했다. 그 공은 평범한 시민에게 있다.

 

콘텐츠의 질이 훨씬 나은 텔레비전 방송보다 유튜브에 몰리는 이유가 뭘까. 거대 방송사는 나에게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정보의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그래서 친밀하게 여기는 사람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해도 그의 유튜브에 몰린다. 유튜브에선 진영 논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설문 결과 청년 세대는 시장경제와 복지국가를 동시에 지지한다. 중도파에 가깝다. 기성세대는 저출산을 돈 문제로 보지만 30대 여성은 경력 단절 문제로 본다. 돈, 시간, 경력이 문제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경쟁 교육에 시달리지 않고 사회가 반듯하게 키워줄 것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세대는 살해되지 않는다. 민주화 세대는 독재자와 부역자에 맞서 싸웠다. 그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자신들의 영웅적 책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상대의 퇴장 없인 퇴장 안 한다. 민주화 세대 상당수가 혁명 좌파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며 유럽식 좌파로 변해왔다. 그러나 청년과 여성들은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로 살아왔다. 청년이며 여성인 젊은 여성들이 희생의 복판에 있다.

 

노동자 투쟁이 발생한 1987년부터 자동화를 추진한 결과 로봇 사용 1위다. 기민한 생산 방식을 구축한 한국은 외국에 나가는 오프 쇼어링off-shoring을 할 때 협력업체를 모조리 끌고 들어가 성공했다. 기존 진보는 고용을 회피하는 대기업의 디스토피아를 노동운동 관점에서 거부하며 국유화를 주장한다. 기본소득론자는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사회운동 관점에서 새로운 소득을 요구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저항을 우회한 정책 대안이다. 명문과 비명문을 가르는 ‘학벌 장벽’과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가르는 ‘공채 장벽’이 문제다. 과거 공무원 고용 안정 보장은 박봉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박봉이 아니다. 공무원은 민간을 오가는 형태로 바꾸고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늘리자.

 

요즘 노력이나 공정과 거리가 먼 신분론을 주장하면서 공정성으로 포장한다. 이제는 정당한 자긍심 형성이 중요하다. 한국은 교육의 기적이 경제 기적보다 먼저였다.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은 여가 시간에 놀지 않고 배움에 몰두했다. 조선인은 근면성이 아닌 근면성을 발휘하게 할 정치체제가 중요했다. 한강의 기적은 벼농사 협업 체계의 산물이다. 농사짓던 시절에는 빅 데이터를 축적한 연장자들이 의사결정 핵심에 있는 장유유서의 문화였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은 집단주의적이면서도 비교와 질시의 문화를 보여준다. 2019 한국인 성향 연구에 따르면 시장에 우호적이면서도 정부 재분배에 높은 선호를 보인다.

 

한국은 새우가 아니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서 소멸 위협을 느끼며 생존했다. 중국과 구별해 동국을 지켜온 것이다. 일본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보냈고, 조선은 평화시대를 보냈다. 일본은 사무라이들의 싸움을 구경하지만, 조선 민초는 외적에 같이 저항했다. 소멸 위협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근대사는 소멸하기 좋은 환경에서 악전고투한 생존기다.

 

악전고투가 5가지 장점을 만들었다. 첫째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다. 경제 위기 때 금 모으기가 사례다. 둘째는 작아서 위협이 되지 않아 운신의 폭이 크다. 한국은 국방 전략을 위협적 야수가 아닌 벌의 ‘독침 전략’으로 표현한다. 주변 개도국에 패거리 두목(대부)이 아닌 동네 당구장 형 같은 역할을 한다. 셋째로 혁신을 강제한다. 연구 개발 투자는 세계 5위고 GDP 대비 연구 개발 투자는 2위인 일본을 넘어서 1위다. 넷째로 식민지 출신이다. 식민지에서 성공했다. 3세계 유물이 즐비한 유럽의 박물관을 보며 분개한다. 제국보다 식민지에 감정 이입을 한다. 패권적이지 않다. 다섯째로 보편을 추구하면서도 고유의 특성을 만든다. 중화 사대 2천 년 역사 속에서 중국 아닌 동국을 만들었다. 만민공동회는 민주주의와 촛불로 이어지는 우리식 민주주의이고 다이내믹 코리아의 원형이다.

 

감상적 민족주의나 냉전 보수로 남북 문제를 풀 수 없다. 젊은 세대는 돈 많이 드는 통일을 걱정한다. 북한 붕괴는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최악의 결과에 해당한다. 북이 자립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비싼 통일을 막는 길이다. 1국 2체제에서 우리 민족끼리가 아닌 북한의 친미화가 필요하다. 미국만이 체제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은 북이 친미국가로 갈 기회다.

 

추천사를 쓴 김공회 교수는 이 책을 각자도생해온 80년대생의 자기 선언이라며 더 나아가 세대를 넘은 연대를 주문한다. 이관후는 추천사에서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닌 단군 이래 처음으로 모종의 억눌림에서 벗어났다고 추켜세운다.

 

때로는 여러 주장을 짜깁기한 느낌도 들지만, 추월로 나아가는 이야기에 흡수해 낸다면 그 또한 풍부함이다. 그런데 추격·추락·추월이라는 표현마저 선진국과 비교 의식을 넘지 못한 것 아닐까. 비교하지 않고 그냥 우리 길을 가면 되지 않을까. 저자들은 중도를 향한다. 중간과 중용은 다르다. 모호한 중간이 아닌 역동적 중용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1980세대론에 가깝다. 세대를 뛰어넘어 시대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리스크를 관리하는 개인’으로 살았다는 82년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에 대비하면 나는 사회를 바꾸려는 조직과 노조를 만들며 ‘위험에 맞서는 집단’을 이루며 살았다. 제도도 시장도 보호해 주지 않았기에 각자도생했다는 사람들,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저자들의 넘치는 낙관주의에 얼마나 공감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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