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노년

by 센터 posted Feb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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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꿈이었다. 모든 게 꿈이었다. 꿈 깨인 현실은 지옥이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에겐 노년의 꿈이 있다. 자식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면 부모 역할을 끝내고 그 이후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기대지 않고 각자도생하면서 살자고 가족이 합의했다. 은퇴 후 각자도생에 자신이 있었다. 60대 초반은 경비 일을 하고 나이가 들어 체력이 달리면 노인 일자리와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꿈이 깨졌다. 이 글은 그동안 언론에 기고한 글과 상담, 간담회, 토론회를 통해 나온 이야기들을 재구성했다. 이름은 가명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노동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55세 전후로 직장에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은퇴를 한다. 퇴직금과 모아 둔 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고 곧 1년 안에 망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과거의 경험을 살린 직장은 찾을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다. 남성은 경비, 주차 관리, 공원 관리, 여성은 청소, 간병, 베이비 시터 일을 주로 한다. 이들은 장시간에 저임금 노동에 시달린다.

 

손주 재롱도 싫어진 3박 4일 노동

 

“하루에 16시간 근무합니다. 임금은 여섯 시간분만 받습니다. 열 시간은 휴게시간이랍니다.” 학교 야간 경비 일을 하는 배 모 어르신은 자신의 노동 조건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하소연할 수가 없다. “일할 노인들 많으니 근무 조건이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을 들을까 겁이 나 건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휴게시간이 있지만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휴게시간 이용 자술서’라는 것 때문이다.“

 

‘휴게시간을 이용해 외출 및 자택으로 이동하기엔 비용 및 교통에 대해 번거로움이 발생하여 본인 자의에 의하여 근무지에 설치된 휴게 시설을 이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자술합니다.’라고 쓰여 있고 여기에 도장을 찍어야 해요. 말이 자술서지 강제 조항이지요.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거든요.” 학교에 머물러야만 하는 그 휴게시간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학교 순찰과 청소를 한다.

 

주말에는 3박 4일 연속으로 근무한다

 

“학교에서 주5일 수업이 시작되면서 근무시간이 더 늘어났어요. 평상시 근무시간은 오후 5시에 근무에 들어가서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을 해요. 16시간을 근무하는 거죠. 그런데 주5일 수업을 하면서 금요일 오후 5시에 근무에 들어가면 토, 일요일을 꼬박 근무하고 월요일 아침 9시에 퇴근하게 됐어요.”

“한 번은 손주들이 안기면서 ‘할아버지, 주5일 수업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하는 거야. 근데 손주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고. 근무시간이 늘어나 죽겠는데 손주는 좋아하니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간 거지.   ‘할아버지, 아파.’ 하는 소리에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거지. 왜 죄 없는 손주가 미워지지.’ 생각하며 씁쓸해지더라고.”

 

3박 4일 노동을 해도 휴일수당, 연장근로수당, 야간수당은 없다. 월 얼마로 정해놓은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토, 일요일에 명절 연휴 3일이 끼는 날에는 한 번 근무에 들어가면 명절 연휴가 끝나는 6일 후에 퇴근한다. 연중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 쉬려고 하면 대체 인력 인건비를 물어 줘야 한다. 나이가 많아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은 노인들 사정을 악용하는 거라고 말한다.

“얼핏 연차 휴가 이야길 비췄는데 애초에 월급 총액을 정할 때 연차 휴가 발생분까지 돈으로 계산해 넣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싫으면 그만두세요. 일할 분 많아요!’ 하지 않겠어. 한 달에 두 번만 쉬어 보는 게 소원이야.”

 

고용 불안과 비인격적인 대우

 

김헌수 어르신은 경비 일을 처음 하던 때 근로 계약을 2년으로 맺었다. 얼마 전부터 계약 기간이 1년으로 줄더니 지금은 6개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한다. 재계약을 할 때마다 해고 불안에 시달린다. 3개월 단위 계약은 경비를 옭아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년짜리보다 6개월, 3개월로 하면 다루기 쉽다고 관리소장이 말했단다.

 

어르신은 장시간 노동보다 힘든 게 입주민의 갑질 행위라고 한다. 청소를 하거나 분리수거로 자리를 비우면 “경비가 제대로 근무하지 않고 근무지 이탈이 다반사”라며 관리소장에게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관리소장은 전후 사정 잘 듣지도 않고 “무조건 입주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해라. 말대꾸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지 마라.”고 훈계한다. 입주민 방문 차량이 방문증을 발급받지 않고 불법 주차해서 경고장을 붙이면 왜 경비가 우리 집 손님 차량에 스티커를 붙이냐며 떼어내라며 이렇게 한마디 덧붙인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니까 평생 경비하는 거야!”

 

폐기물을 스티커 부착 없이 내다 버린 입주민을 CCTV로 찾아서 “혹시 폐기물 내놓으셨죠?”하고 물으면 “아니, 누가 몰래 버려. 알아서 주민센터에서 스티커 발급받을 텐데 누굴 양심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거냐!”며 오히려 하지 않는 이야기까지 덧대어 화를 낸다.

 

같은 주민과 두세 번 갈등이 반복되면 그 사람만 보면 움츠러들고, 피하게 된다고 한다. 뉴스에 아파트 갑질 얘기가 나오면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우리 아파트 입주민들은 다 좋은 사람들 뿐이야.”라고 거짓말을 한다는 김헌수 어르신.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당신 없어도 일할 사람 많다.”이다. 그러다 보니 일하다 다쳐도 말을 하지 못한다. 2018년 근로복지공단 발표 자료(1회차 기준, 재해 발생 연도 기준 연령)에 의하면 연령대별 승인사고 산재 비중이 60대 이상에서 2009년 12.2%에서 2018년 23%로 두 배 증가했다. 괜히 다쳤다고 하면 싫어할까 봐 자비로 치료한다고 한다. 이렇게 숨겨진 산재까지 합하면 통계보다 곱절은 많지 않을까.

 

휴게실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도 있다. 초소에 휴게시간이라고 붙여 놨음에도 문을 두드리고 택배 물건 달라고 해서 “다음부터는 휴게시간을 피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경비 월급 내가 주고, 택배 물건 집 앞으로 갖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지러 왔는데 이게 무슨 행패야!”라며 갖은 욕설을 퍼부어댄다고 한다.

 

대, 소변 소리를 들으며 밥 먹고 쉬고

 

휴게실이 없어서 겪는 어려움은 고령 여성들의 대표적인 직종인 청소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휴게실이 없어서 도시락을 화장실에서 먹는 경우도 있다. 청소도구가 들어 있는 화장실 칸에서 먹다 보면 옆 칸에 사람이 볼일 보러 들어온다. 반찬으로 싸 온 김치, 깍두기 씹는 소리 날까, 냄새날까 조바심으로 도시락 뚜껑을 닫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조심스럽게 먹기도 한다. 똥 냄새도 함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2018년 8월 고려대·광운대·덕성여대·동덕여대 등 서울 14개 대학 청소 노동자 휴게실 실태를 조사했다. 청소 노동자가 일하는 202개 건물 가운데 108곳은 휴게실이 지하나 계단 밑이었다. 에어컨이나 냉방장치가 없는 경우는 69곳. 17개 건물엔 휴게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휴게실이 없으니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쉬는 일이 생긴다. 작년 여름에 서울대학교 휴게실에서 67세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 노인들이 많이 일하는 또 하나의 직종이 간병이다. 보통 이들은 하루 24시간 간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수면시간 8시간을 뺀다고 해도 하루 16시간 근무한다. 최저임금 8,350원으로 계산하면 133,600원을 받아야 한다. 간병 노동자들은 시급 계산이 아니라 하루에 얼마 이런 식으로 계산한다. 24시간 간병에 하루 9~15만 원을 받는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들도 장시간 저임금에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성희롱, 성추행을 하소연하는 간병 노동자들이 많다. 24시간 간병을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 가서 쉬곤 했는데 요즘은 이것도 어렵다. 조선족 사람들이 간병 시장에 많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이들은 집에도 가지 않고 간병하고, 간병비도 저렴하게 받고, 나이도 젊어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이 찾는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환자들은 “너희들은 나 때문에 먹고 사는 거야.”라며 자신의 요구를 잘 따르라는 압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박카스 병에 농약을 담아 온 노인

 

경비, 청소원, 간병 같은 일이 힘에 부치면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직업이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다. 복지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급여가 한 달에 27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려는 노인들은 많고, 노인 일자리는 부족하다 보니 이런 일도 발생한다.

 

이혜자 어르신이 나를 찾아왔다. 대뜸 책상 위에 박카스 한 병을 올려놓는다. 나에게 주려는 줄 알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집어 드는 순간 어르신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거 마시고 죽을 거야.” 박카스 병에는 농약이 들어 있었다.

 

어르신은 복지관에 2020년도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신청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복지관 등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에는 참여 못 하게 된 노인들의 항의가 해마다 되풀이된다. 어르신도 복지관에 따졌지만,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평소에 친분이 있는 나를 찾아와 일자리를 연결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어르신은 30세에 혼자가 돼 아들을 키웠다. 노점에서 떡을 팔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더 일하고 싶었지만 65세가 되니 청소일조차 못하게 됐다. 40세인 아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어르신을 도울 형편은 아니란다. 그나마 65세가 되어 받는 기초연금 30만 원과 노인 일자리 수당 27만 원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 주는 생명줄이다. 이 가운데 27만 원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 달을 30만 원으로 살려니 엄두가 나지 않자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이런 노인 노동 실태를 들으니 겁이 났다. 온갖 갑질과 욕설, 장시간 노동, 저임금을 받으면서 경비 일을 할 수 있을까? 화장실에서 밥 먹는 걸 견딜 수 있을까? 노인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인 노동시장으로 진입이 두렵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노후 지옥을 외면할 순 없다. 지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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