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_우수상] 빈자리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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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  제조업 노동자

 

 

야간근무 전담 조로 일한 적이 있다. 보통의 2교대 근무가 주야 교대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S회사는 밤 9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야간 근무를 전담하는 야간 조가 따로 있었다. 주간 조는 보통 회사들의 일정과 같이 운영되고 오후 5시까지가 기본 근무였고 잔업 해야 할 파트만 따로 9시까지 일하고 야간 조와 교대했다. 물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야간 조 근무시간은 상당히 유동적이어서 아침 8시까지 일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고 대체로 6시면 대부분 퇴근했고 일이 많은 파트만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잔업 했다. 들쭉날쭉한 발주 물량 때문에 야간 조를 적극 활용해 맞추는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내가 입사한 뒤 6개월 정도는 굉장히 일이 많아서 잔업을 계속했고 인원도 계속 보충이 됐다. 처음에는 30명도 안 되던 인원이 나중에는 40명 가까이 늘어났다. 

 

내가 일하는 파트에는 담당자가 없었고 차장이 나에게 직접 일을 가르쳐줬는데 부서장이기도 한 차장은 바빠서 오래 일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여기저기 물어보고 직접 부딪치며 일을 익혔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자 새로 입사한 한 명을 나에게 붙여주고 일을 가르치라고 했다.

 

석 달 만에 파트장이 되어서 보니 회사는 쉴 새 없이 바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빈자리가 많았는데 이제는 자리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사무실 칠판에 적힌 발주 내역은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매일 주간 조와 교대했고 교대를 받았다. 일요일과 공휴일 구분 없이 6개월 정도를 거의 쉬지 않고 매일 출근했다. 중간에 인원의 반 정도씩 교대로 출근하면서 체력적 안배를 하기도 했다. 야간 근무였기에 사기를 높인다며 퇴근한 뒤 아침에 24시간 영업하는 곱창 식당에서 회식도 했다.

 

바쁘고 고됐지만, 함께 밤새며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 북돋워 주며 나름 화기애애하게 일했다. 오래 일한 몇 안 되는 사람과 입사 1년이 안 된 많은 사람이 큰 문제 없이 잘 어울렸고 일 자체는 습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한두 달 반복해서 일하면 금세 적응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에 주말 근무가 딱 끊어졌다. 그다음 주, 그다음 주도. 그리고 잔업이 없어지고 일감은 눈에 띄게 확 줄었다. 기본 근무가 6시까지인데 어느 날에는 5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버스로 퇴근하는 나는 그날 다른 직원의 차를 얻어 탄 다음 지하철을 타고 조금 걸어서 집으로 갔다. 그렇게 꽉 조여져 있던 생산 현장은 느슨해지고 또 느슨해져서 뭔가가 탁 풀어져 버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이 되었다.

 

차장은 출근한 직원들을 휴게실로 모았다. 아니, 원래부터 출근하면 휴게실에 모여 간단한 전달사항을 얘기했으니 일부러 모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 차장이 사람들을 일부러 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의 분위기가 그랬다. 오래 일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 이미 이날의 분위기를, 그 순간을 짐작하게 하고 있었다.

 

따로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모인 사람 대부분이 함께 해고되는 상황이었으니 ‘누구’를 가려서 명단을 읊을 이유가 없었다. 40여 명의 야간 직원 중에 30명이 한꺼번에 해고자 명단에 올랐고 그날이 해고 통보를 하는 날이었다. 의외로 해고자들은 덤덤했다.

“이제 내일부터 뭐 하지?”

“당장 일자리 알아봐야겠네.”

그런 말을 하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휴게실을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공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이 출근한 사람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고 돌려보내는 차장의 의도를 나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기본 근무를 한 것으로 올리라고 사무실에 얘기해놨습니다.”

그것이 차장이 해고자들에게 해주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리고 나는 빈자리가 많은 현장에서 여러 기계를 조작하며 많지 않은 일을 처리했다. 원래 맡아 하던 파트는 일을 가르쳐 준 동생에게 맡기고 그동안 틈틈이 다른 작업을 조금씩 해봤던 경험을 살려 해고자들의 자리를 대신 채웠다.

 

나는 불과 그 석 달 전에 정규직이 됐다. 정규직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해고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파트를 맡아서 일하고 있었고 다른 기계들도 다룰 줄 아는 게 많았으니까. 일감이 줄었다고는 해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언제 다시 일감이 늘 것인지 차장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자주 바꾸는 것과 같이 휴대폰 부품 업체의 일감도 들쭉날쭉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가 일감이 많을 때였고 그때는 일감이 바닥을 치는 때였다.

 

빈자리가 많은 곳에서 여러 기계를 만지며 일한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불과 두 달 정도 바닥을 쳤던 일감은 서서히 올랐고 석 달쯤 뒤에는 가장 바빴을 때의 80% 정도를 회복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고작 석 달밖에 안 되는 기간이었다. 일감이 서서히 늘자 차장은 휴대폰을 들고 있을 때가 부쩍 늘었다. 그리고 현장의 빈자리는 하나씩 채워져 갔다. 새로 입사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얼마 전에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잠깐 쉬고 있으라고 말할 것이지!”

“이럴 줄 알았지. 그냥 한 달 잘 쉬었네 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반응은 해고될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게 나는 신기했다. 그 덤덤함과 무심함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해고된 사람들은 다 비정규직이었고 재입사를 하면서 다시 비정규직이 됐다. 해고됐던 인원의 절반 이상이 다시 모였을 때쯤엔 일감이 가장 바쁠 때와 비슷할 정도가 됐다. 집단 해고 이후에 6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전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일감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고, 비슷한 방식으로 인원을 줄였다가 늘렸다고 했다. 내가 경험한 집단 해고는 처음이 아니었다. 오래 일한 직원들은 그전에도 똑같은 경험을 했고 심지어 그중에는 해고를 당했던 사람도 있었다. 애초에 정직원 숫자는 전체 야간 조의 절반도 되지 않았고 정직원 중에서도 개인적 사유로 그만두는 경우가 있었고 정직원 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회사에서는 그것을 조정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일감이 일정치 않으니 야간 조 근무시간을 조정해 가며 비용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나는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란 것을 다시금 느꼈다. S회사는 단지 야간 조를 비용을 조절하는-정확히는 절감-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없앨 수 있는 부분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S회사의 야간 조가 원래는 없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처음에는 주간 조만 운영했고 일감이 늘 때마다 잔업과 특근을 반복하던 직원들이 불만이 쌓여가자 야간 조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야간 조의 시작은 주간 조 정직원들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 S회사는 창업 20년쯤 된 회사였고 주간 근무자들은 전원 정규직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야간 조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데다 일감이 줄면 인원도 줄어드는 방식의 운영은 너무 뚜렷한 차별이었다.

 

처음의 집단 해고 이후에 나는 현장에서 일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정규직인 나는 같은 야간 조이지만 야간 조의 운명에 동승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다행인 것인지 불행한 것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해고됐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좀 헷갈렸고 어느 순간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됐다. 그 결심을 실행하는 날은 내가 S회사에서 일한 지 2년이 다 돼 가던 때였다. 그날은 다시 빈자리가 많이 생긴 날이었다.

 

처음의 집단 해고에서 일 년쯤 지난 시기에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전에 또 비슷한 시기를 겪었기에 이미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다. 반복은 짐작을, 짐작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줬기에 그전보다 더 덤덤한 모습으로 사람들은 차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전과 같은 얘기였고 차장의 표정도 전과 비슷했다. 비슷한 인원이 다시 해고 명단에 올랐고 휴게실 안은 역시나 조용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의 상황 하나뿐이었다.

 

텅 빈 휴게실에서 가장 끝까지 앉아있던 나는 생각을 굳히고 일어나서 사무실에 있던 차장에게 가서 말했다.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멀뚱한 표정의 차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장이 작성한 명단에 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명단에 포함되고 싶었다. 그것이 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반복될 일과 또다시 비어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빈자리에 가서 그 사람들의 일을 대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알겠다.”

한참 지나서 입을 연 차장은 그 말밖에 하지 않았고, 나는 바로 짧은 인사를 한 뒤에 탈의실에서 짐을 챙겨 공장을 나섰다.

 

나중에 S회사에 남아있던 직원과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아예 야간 조가 없어지고 남아있던 야간 조 직원들이 주간 근무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중의 통화에서는 다시 야간 조를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통화 뒤에 나는 내 결심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나는 다시 비정규직이 됐다. 자동차 부품 쪽은 일이 꾸준하다는 얘기를 그전부터 들어왔다.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에 입사한 첫날,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사람에게 나는 물었다.

“여기는 일이 많나요?”

지친 기색의 얼굴이 나를 돌아다 봤다. 그 얼굴과 나는 5년 가까이 함께 일했다. 그곳에서는 급격히 일감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고 직원을 해고하는 일도 없었다. 때로 빈자리가 생기기도 했지만 금세 누군가가 와서 자리를 채웠다. 이따금 S회사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연락이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가 S회사를 나간 뒤에도 퇴사와 입사를 몇 번 더 반복한 사람이다. 하던 일이, 손에 익은 일이 편하고 좋다는 그 사람은 어쩌면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던 것이 3년쯤 전이니 알 수 없다. 이제는 S회사와의 연도 다 끊어진 듯하다. 그래서 그곳에 빈자리가 또 있는지 어떤지를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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