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_최우수상] 우리는 ‘똥 치우는 아줌마’가 아닙니다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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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  요양보호사

 

2.최우수상_이미영.jpg

 

나는 ‘요양보호사’이다

 

2014년 여름부터 교육과 시험, 12월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20대 중반부터 쉬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활동해왔으나 40대 후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 실습 기간이 있었는데 요양원 1주일, 방문 요양 및 주간 보호 1주일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간 보호 시설은 요양보호사들이 프로그램하면서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함께하는데 노래와 춤으로 여흥을 즐기는 것에 그다지 재주가 없었던 나는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사회복지사를 두고 요양보호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싶었다.

 

요양원 실습에서는 요양원의 특유한 냄새와 바쁘게 움직이는데 뭐가 뭔지 몰라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경우 돌봄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치매에 대응하는 것은 글로 배웠으나 접해본 적이 없어서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한 여성 어르신이 뭘 해달라고하는 데도 내가 잘못 알아듣자 욕을 하시는데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실습을 마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였다.

 

그런데도 나는 다음 해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한 요양 시설은 규모도 꽤 되고, 신설 시설이라 깨끗하였으며 나는 현장 용어로 퐁당당(24시간 근무, 48시간 휴무, 3일마다 한 번 출근해서 24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근무했다. 실습도 하고 이론도 익혔으나 요양원 돌봄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은 달랐다.

 

새벽녘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

 

요양보호사로서의 일은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포함한 조회, 청소, 기저귀 갈기 여러 차례, 목욕이 있는 날은 8~10명 씻기기, 간식을 드리고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점심을 위해 어르신마다 이동해 모시고 점심 드시게 도와드리고, 어르신 돌봄을 마무리하면 요양보호사들은 교대로 식사를 한다. 내가 밥을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몸이 고되다 보니 먹는 양도 많아지고, 후다닥 먹고 가야 동료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휴식 시간도 없이 기저귀 케어 등 어르신을 돌보고 인지 활동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위해 이동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간식을 드리고 또 청소, 빨래 등정리하고 나면 저녁 식사 준비, 식사 돌봄 후 취침을 위한 준비를 한다. 약도 하루에 여러 차례 어르신들에게 드려야 한다. 저녁 8시가 지나면 어르신들이 주무시기 시작하고 그러면 온종일 땀범벅이된 요양보호사들은 자기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야간에도 라운딩을 수시로 돌아야 하며, 기저귀 케어를 여러 차례 해야 하고, 어르신이 부르시면 달려가야 한다.

 

그나마 내가 근무했던 요양원은 휴게공간이 있어서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교대로 휴식을 취할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요양원의 경우 야간 휴게시간이 있기는 하나, 휴게공간이 없어 어르신들의 생활실에서 돗자리를 깔고 쉬거나 소파 등에서 잠시 눈붙이는 정도이고, 이러다가도 어르신이 부르시면 달려가서 보살펴야 한다. 휴게시간이 있어도 휴게공간이 없고, 휴게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밤 근무 중인 시간이었던 여름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새벽 2시경 나를 불렀다. “야야~” 누워만 계시는 여자 어르신으로 몸은 왜소하였으며 허리가 굽어 늘 모로 쭈그리고 누워 계시는 분이었는데 밤이면 잠이 안 온다고 자주 부르셨다. 혼자 근무 중에 부르시니 가보았는데 하시는 말씀이 “창밖에 갓 쓴 젊은이가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들어오라고 해라.”였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층은 4층이었다. 순간 식은땀이 흐르고 “귀신이 어디 있어? 나는 유물론자야.” 하고 평소 이야기하던 나였지만 너무 당황스러웠다. 얼른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당시 이 어르신은 창문에 블라인드 내리는 걸 싫어하셔서 그 창문만 밤에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어르신, 젊은이 자기 집에 갔으니 얼른 주무세요.” 하고 나왔으나 동료 요양보호사가 올 때까지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그날따라 요양보호사를 찾는 어르신이 많았던 기억과 함께 아직도 그 어르신의 모습이 생생하다.

 

아무리 신설시설이라고 해도 요양원 특유의 냄새는 있었다. 24시간 근무를 마치면 아침에 퇴근해서 씻고 쉬었다가 오후에 사람들을 만났다. 이야기 나누면서도 나는 내 냄새를 맡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고 앞에 있는 사람에게 “나한테서 냄새 안 나?” 물어보곤 하였다. 앞에 사람은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하지만 난 코끝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곤 하였다. 아마 석 달 정도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츰 요양보호사 업무에 익숙해져 갔다.

 

도대체 뭐 하는 O들이야?

 

평일 낮에 한 어르신의 아들인 보호자가 술을 먹고 요양원을 방문했다. 요양원 근처에 사는 아들은 자주 엄마를 찾아왔으며, 요양보호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신의 엄마에게 향했다. 그날 요양보호사들은 다른 어르신을 돌보고 있어 40대 후반 정도의 아들이 술에 취해 올라와 있는 줄도 몰랐다. 갑자기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도대체 뭐 하는 O들이야?”, “우리 엄마 상태가 왜 이래?”, “방은 왜 청소를 안 했어.” 등 반말과 욕설과 삿대질을 하면서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요양보호사들을 불렀다. 어르신은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있었으나, 보호자였기에 요양보호사 그 누구도 말대꾸할 수 없이 남자 보호자의 언어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자 방문을 자제시키고 있지만, 요양원이나 요양보호사들이 보호자 방문을 제지할 수도, 방해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술에 취해 방문해 어르신들이 있는 층에 올라오는 것은 1층 사무실에서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호자들도 교육이 필요하다.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호칭, 어르신들이 보는 데서 요양보호사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들과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요양원의 경우 어르신 대비 요양보호사 숫자가 2.5:1이라고 하면 요양보호사 한 명이 어르신 2~3명을 모시는 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 전체 인원 대비 숫자 비율이라 요양보호사는 낮에 7명 이상, 야간에는 20명 이상 30명도 혼자 돌보는 경우가 있다. 나 또한 야간에 혼자서 30명을 돌본 적도 있다. 보호자들이야 자신의 부모에게 요양보호사가 집중하기를 바라며 이것저것 요구하지만, 일하는 요양보호사 처지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편이 알까 두려워요

 

수원에서 요양보호사협회를 꾸리고 요양보호사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50대 후반 여성 요양보호사의 이야기이다.

결혼 후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자식도 다 키우고 시간 여유가 생기니 봉사하는 마음으로 노인 돌봄 일을 시작했으며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어느 날, 야간에 혼자서 한 층의 20명 어르신을 돌보면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나이 든 남자 원장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고 그 원장은 CCTV 사각지대인 쓰레기장까지 쫓아와서 젖가슴을 주물렀다. 당황스러웠지만 갑작스러운 일이라 항의도 못 하고, 누구에게도 말도 못 하고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혹시 남편이 이 일을 알까, 다시는 이 일을 못 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나를 만나면서 처음 이야기한다며 그 원장을 혼내주고 싶다던, 곧 예순 살이 되는 여성은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물증도 없고 늙은 남자 원장이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면 그만인 상황이라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

 

김치 싸대기, TV 막장 드라마에서만 보는 건 아니에요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서만 생활하나 인지가 있는 어르신이 요양보호사를 불렀으나 -물론 ‘아줌마’라고 했지만– 요양보호사는 저녁 식사 돌봄 중이었고 다른 어르신의 식사를 배송하는 중이라 조금 늦게 어르신께 갔다. 어르신은 늦은 요양보호사에게 욕설과 함께 자신의 식판에 있던 김치를 들어 던졌다. 김치는 눈 쪽으로 날아왔고 안경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요양보호사는 그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어르신은 계속 소리 지르며 욕설을 하여 다른 요양보호사들과 요양원 원장과 사무실 직원들이 올라왔다. 이 상황을 본원장은 김치로 맞은 요양보호사에게 “어르신께 무릎 꿇고 사과하라.”라고 했고 일반적이지 않은 이 상황에서 얼떨결에 요양보호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 요양보호사가 저녁에 퇴근하면서 나에게 전화로 하소연했다.

“정말 요양보호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원장은 그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를 격리하고, 다른 요양보호사가 수발들게 지시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정황도 확인하기 전에 조선 시대 아씨 마님을 모시는 몸종도 아닌데 무릎 꿇게 하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지만 그 후에도 이런 종류의 사례가 종종 생겼다.

 

○○○ 요양보호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까?

 

한 요양원의 전체 직원 조회 시간에 배포된 설문지 문항이다. ○○○는 이 요양원에서 3년 이상 근무 중인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의 일방적인 탄력적 근무시간제에 동의하라는 요청에 뭐냐고 질문하고 더 알아보고 사인하겠다고 한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가 출근하지 않는 날, 전체 직원 조회에서 배포된 종이를 다른 조합원이 사진 찍어 보내주면서 드러났다. 본인이 출근하지 않은 날 벌어진 일을 전해 들은 ○○○는 망연자실하였다.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없다던 대표는 자기 말 잘 듣는 몇 요양보호사와 함께 이런 식으로 조합원을 ‘왕따’시키고 있었다. 참판 댁 아씨를 모시는 몸종 대접보다 더한, 노비 중 양반 말 안 듣는 노비를 멍석말이로 매질하는 경우였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멍석말이 된 요양보호사를 매질하라고 시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어느 누가 요양원 측의 의도가 보이는데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하겠는가? 말할 수 없는 분노에 즉각 노동조합이 개입하였으며 공식적인 사과와 사과문을 요양원 각 동에 게시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요양보호사를 대하는 요양원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돌봄 노동이라는 아름다운 노동을 하는 노동자이다

 

장기요양제도가 생기고 국가자격증을 가진 요양보호사들은 아직도 최저임금에, 휴게시간 공짜노동에, 갖은 갑질과 욕설, 노조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있다. 협회부터 노동조합까지 요양보호사로 살았던 5년 동안 접한 ‘일하는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한 사례는 넘치고 넘친다. 동료에게 노동법에 대해 조금 설명했다고 해고당하는 일도 있다. “어르신 돌보는 일은 봉사로라도 해야지. 나이 들어서 일할 기회도 주는데 100만 원만 줘도 감사히 일해야지. 150 이상 월급도 주는데 뭐하러 연차니 휴게시간이니 이런 거 따지면서 어렵게 사냐?” 하시던 요양보호사도 체불임금 진정으로 3년 동안 못 받았던 400여만 원을 받게 해주니 고맙다고 하신다.

 

착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싶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돌보는 일을 좋아한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일상을 요양원에서 보내는 어르신들과 함께 웃으며 돌봄 일에 보람을 느끼는 요양보호사들이 사 회 적 으 로  ‘똥 치우는 사람들’로 대접받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돌봄 노동도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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