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_대상] 해고자로 산다는 것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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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월  항공기 기내 청소 노동자

 

1.대상_김계월.jpg

 

광주에서의 20년 삶을 접고, 서울로 오게 된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인천공항에 있는 아시아나 하청업체인 ‘케이오’라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2014년 6월 5일, 사번은 22301.

그럴듯한 사번까지 있으니 정규직처럼 보였지만, 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였다. 서울에서 매일 첫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인천공항으로 6년을 오고 갔다. 근무시간은 7시부터,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퇴근 시간까지 어떤 회사처럼 정해진 커피타임조차 없이 그저 쉴새 없이 항공기 객실 청소를 했다. 항공기 스케줄에 의해 전적으로 움직이는 형태의 작업 환경에 처음엔 정말 적응하기 어렵고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서울살이에 적응하여 생활 가장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절박한 나는, 그 고되고 힘든 인천공항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5년 어느 날, 우리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바로 노조 가입서를 썼다. ‘일한 만큼 임금을 지급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자.’ 그리고 망설임 없이 노조에 바라는 점을 기록하는 빈칸을 채웠다.

 

첫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월급 명세서를 확인해 보니 너무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당시 기본급이 88만 6,400원. 3일 일하고 하루를 쉬는 반복적인 형태였다. 공휴일도 없이 반복적으로 근무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 8시간을 더 일해주는 결과가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수당으로 임금을 분리해 놓은 것을 보고, 회사가 임금을 빼앗아 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전 직원들에게 알리고, 일한 만큼의 임금과 법적 최저임금을 받아내는 일을 노동조합에서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고, 단체협상에 명시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휴일은 당당히 쉴 수 있는 날이 되었다.

 

가장 큰 성과는 단체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로써 아시아나케이오지부는 당당하게 민주노조 깃발을 꽂게 되었다. 노조 임원과 간부, 그리고 조합원들과 함께 이룬 결과였다. 하지만 그 기쁨과 감격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민주노조를 향한 회사의 탄압은 시간이 갈수록 악랄해졌기 때문이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갈라치기하고, 회유, 거짓선전, 그리고 불평등한 진급으로 인한 노조 탈퇴 현상까지.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노조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갈수록 현장의 노동 강도와 인권은 무시된 채 오로지 돈 벌기에만 급급한 근무 형태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볼 수 없는 지경으로 다다랐다. 매년 인천공항은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고, 항공기는 편수가 날로 늘어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항공기에 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밥시간조차 주지 않아 여행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와 초콜릿을 주워 먹는 것이 배고픔을 달래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그 더운 여름날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했다. 깜깜한 항공기 안에 들어가 손전등 몇 개로 불을 켜서 일하고, 좁은 기내를 왔다 갔다 하다 무릎이 다쳐 피멍이 들기도 했다. 다친 지도 모르고 집에 와서 샤워하다 상처를 발견하는 일은 셀 수도 없었다. 여름에는 에어컨조차 틀어주지 않아 작업복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다. 또 누군가는 생리대를 교체할 수 없어 오버나이트를 찼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래도 노조가 있으니 조금씩 노동 환경을 바꾸고, 그동안 무시당하고 옳은 소리 한 번 제대로 말해본 적 없는 현장에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

 

내가 일하는 파트는 ‘스페셜’이었다. 박삼구 일가나 그 가족들, 아니면 소위 말하는 높은 양반들을 위한 일 등급 좌석을 청소하는 파트였다. 시트부터 기내 주변까지 항공기 내부 전체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쓰는 약품이 해로운 물질인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CH2200’과 ‘MD125’라는 독한 약품을 사용하는 데도 그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고, 보호 장비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해 온 나는 눈이 가렵고 몸이 가려워도 그냥 갱년기에 오는 체질 변화로만 생각했다. 스페셜 조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크고 작은 부작용 경험을 쏟아냈다. 우리는 모든 증거를 바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용하여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했다. 결국 회사는 벌금과 법적 제재를 받게 되었고, 더는 그 약품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둘 노동 환경을 바꾸는 데 노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동료들은 민주노조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말하며 그동안 빼앗겼던 권리를 찾아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고, 우리의 일터인 인천공항까지 덮쳤다. 우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뼈아프도록 일해온 죄밖에 없었다. 3월 한 달, 우리 케이오 회사 분위기는 적막 그 자체였다. 불안과 공포가 닥쳐올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스스로 예감하고 있었다. 곧 회사는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공지를 했다. 일방적이었다. 단 한마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강제적인 공지였다. 팀장의 브리핑을 듣기 위해 동료들이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그는 회사의 이런저런 핑계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다. 열이 받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소개를 먼저 했다.

“저 김계월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부지부장입니다. 지금 팀장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동의하실 건지요. 코로나 19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서 작성이라니요. 분명 꼼수가 있습니다. 무기한은 언제 회사가 나를 불러 줄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상태입니다. 아무리 1노조(한국노총)가 교섭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요. 어려운 위기가 찾아오면 모두 고통 분담이라도 해야 할 대안이나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노조와 회사가 한편이 되어 발표한 공지 내용은 케이오 사원들을 깊은 고민과 갈등으로 내몰았다. 그 일주일, 선택의 시간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누구는 두통에 시달린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살이 2kg이나 빠졌다고 했다. 결정하고 왔는지 수석 감독한테 작업복을 건네주며, “다음에 저 불러 주면 제 작업복 돌려주세요.” 하고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서는 모습은 슬픔을 떠나 수년간 일해온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처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백여 명이 무기한 무급휴직에 사인했다. 공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넓은 활주로에 정지된 아시아나 항공기를 보니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수년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떠났고, 나는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결국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월 11일, 총 6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당했다. 내가 정규직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해고했을까. 비정규직, 그것도 하청 노동자이기 때문에, 아니 민주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에 회사는 더 쉽게 해고했을 것이다. 분하고 억울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뼈아프도록 성실히 일한 나에게 해고라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었다.

 

무기한 무급휴직에 서명하지 않은 민주노조 조합원 6명은 5월 6일, 인천고용노동청에 농성 천막을 치고 해고만은 막아달라고 어떻게든 회사와 대화를 통해 해결해 보려 했지만, 회사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협상을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인천고용노동청을 떠나 5월 15일, 종각에 있는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 부당한 해고에 맞선 투쟁을 위한 천막농성을 이어 시작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더 컸다. 우리는 부당한 해고에 맞서 저항하는 길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천막농성 3일째 되던 날, 그것도 5.18광주민주항쟁 40주년 기념일에 종로구청 용역 패와 공권력에 의해 천막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해고자의 집, 천막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울부짖음과 처절함뿐이었다. 우리 해고자들에겐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만이 내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 주장했지만, 재벌 권력은 비정규직의 외침을 외면하고 농성 천막을 총 세 번, 강제로 철거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물러설 수 없었다. 1톤 트럭과 1인용 텐트를 치고 다시 농성 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40리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든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를 걸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그 긴 길을 두 발로 걷기 위해 나섰다. 잠실에서 출발해 화양리 건국대학교를 지나 성수동 한양대학교를 지났다. 동대문 평화시장 전태일 다리를 밟았고, 종착지인 종각 금호아시아나 본사 해고자의 집 농성 천막까지, 총 40리 길을 우리는 함께 걸었다. 성수동을 지날 때는 모토로라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20대에 몸 바쳐 일하고 소리 높였던 그 길을, 30년을 넘어 돌고 돌아 다시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해고자가 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연대의 힘이 아니면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더 단단하게, 더 강하게 부당 해고에 맞서 투쟁할 수 있도록 힘을 얻은 것은 연대 동지들이 매일 함께해준 덕이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습한 기온 때문에 겨드랑이 땀띠로 살이 쓰렸고, 여기저기 더위를 피해 부족한 잠을 길거리에서 잠깐 눈을 붙여 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농성 투쟁 67일 만인 7월 13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7월 1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아냈다. 부당 해고 판결을 받던 날도 온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동지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한쪽에서는 부당 해고 판결에 대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리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변했다.

 

주문

이 사건 사용자가 2020년 5월 11일 이 사건 근로자들에게 행한 해고는 부당 해고임을 인정한다. 이 사건  사용자는 이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이 사건 노동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에 정상적으로 근로하였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

 

부당 해고 신청 사건에 대한 주문이다. 그러나 회사는 석 달이 지나도록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간 지도 180일이 지나고 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고용노동청. 여의도 산업은행, 저녁에는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원청에서 피켓 선전전으로 여전히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에선  아시아나항공에 기간 산업 안정 기금으로 국민 세금 2조 4천억 원을 투입했다고 했다. 고용을 유지하며 국민 세금으로 투입되는 기금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뭘 잘못이라도 한 것인 양, 그 책임이 노동자 탓인 양 단 한 푼의 돈도 쓸 수 없단 말인가.

 

오늘도 지부장님은 이른 아침  바람에 떨어져 내린 노란 은행잎들을 쓸고 계신다. 청계천 물이 얼기 전에, 눈이 내려  천막 앞마당을 쓸기 전에 복직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농성장 앞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말이 해고자들과 똑같다며 너무 슬프다며 노래를 부르신다.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나는 오늘도 이 노래와 함께 고용노동청 앞에서 아침 피켓 선전전을 한다. 내 삶의 터전, 인천공항 현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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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2021년 1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 해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여전히 이들의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280여 일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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