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리에 구십 리가 반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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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선 센터 공동대표, 변호사



코로나19 이후, 물리적 거리두기로 인해 자가격리나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유통·배달 노동자들의 업무가 늘어났다. 대부분의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열악한 임금이나 노동조건, 초과 노동 등의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월, 입사 4주 차 신입 40대 ‘쿠팡맨’이 새벽 배송에 나섰다가 빌라 4~5층 사이 계단에서 쓰러져 결국 숨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늘어난 주문 물량이 배송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몰리면서 생긴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정도 빌라를 모두가 잠든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계속 오르내리는 배송 업무는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말한다. 휴식 시간도 지켜지지 못했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일부 배송직 노동자, 화물 운송 특수고용 노동자,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노동강도가 살인적으로 늘어났음을 의미하고, 안전대책도 없이 개인이 감내하면서 그저 스러져간 것이다.


한편으론 업무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직종도 있다. 코로나19로 중소규모 기업 등의 폐업, 축소 등으로 인해 해고 또는 무급휴직을 강요받거나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해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 기사, 방과 후 강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업무 감소 내지 폐업 등은 당장 생계 위협으로 이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인 항공업과 관광업계는 결국 무급휴직, 권고사직과 더불어 해고를 단행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존을 가혹하게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고용유지지원금 대책은 그 지급 범위와 실업급여 지급이 협소해서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노동자에게만 전가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해결하려 한다면, 한편으론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들도 빈곤의 악순환을 겪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업에 대한 지원은 기업들의 해고 금지, 노동자들에 대한 생계 지원 등과 함께 제도적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 지원 방식만이 아니라 유럽과 같이 해고 금지와 더불어 생계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도 해고 회피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제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또 다른 도덕적 해이로 나타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는 굳이 흑인 등의 피해가 심각한 미국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청도 대남병원과 같은 시설 중증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계층, 그리고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여성 노동자, 예술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공격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이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고 금지 등 긴급조치를 실행해야 하고, 노동권 및 건강권 보장 정책이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강조한 가운데, 여당이 예술인에 이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 개정안을 21대 국회에 발의하였다. 법안에는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 여러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등’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특수고용 노동자는 물론이고 프리랜서, 배달 택배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포함되었다. 


이번 코로나19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사스, 메르스 등과 같이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나 IMF, 금융위기 등 새로운 경제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이나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그 논의는 정치적 의제로서보다는 실질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경제·복지 정책이었으면 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한국 속담도 있지만 ‘백 리에 구십 리가 반’이라는 중국 속담도 있다. 시작도 어렵지만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의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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