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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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법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인간 세상의 규칙을 정하는 법은 그만큼 힘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법을 만들어달라고 투쟁하고, 어떤 법을 바꿔달라고 농성하기도 한다. 어떤 사회에서 어떤 영역을 관장하는 법이 바뀌면 그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변화한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이 동네에서는 동네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꾸어놓을 만한 법이 드디어 시행되었다. 강사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하는 일명 강사법말이다. 다들 아는 것처럼 강사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대학들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전체 강의 규모를 줄이고, 강사에게 배정되는 강의 수를 줄이는 대응을 했다. 그래서 여러 언론에서는 해고 강사라는 사람들이 구구절절 자신이 어떻게 해고되었는지, 자신을 해고한 대학 당국의 부도덕함을 성토했다


이 동네에 있으면서 이른바 강사법 파동을 보고 있다 보니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려 보인다. 어느 동네를 가든 임시 기간제 비정규직의 삶이야 다 이렇게 비참하고 슬픈 현실이 없겠냐만, 이 동네는 사용자의 무책임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엄청난 격차와 불평등,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냉대는 물론 비정규직들 사이에서도 서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야만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얼마 전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811월에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198월 이전까지 강의 기회를 상실한 강사는 총 7,834명이고, 20191학기 강사 재직 인원은 46,925명이다. 20181학기 강사 재직 인원 58,546명 대비 11,621(19.8%) 감소한 수치이다. 11,621명 가운데 3,787명은 20191학기에도 다른 교원 직위로 강의를 유지하고 있어 대학에서의 강의 기회를 상실한 강사 규모는 7,834명이란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이른바 비전업 강사야 본 직업이 있으니 생계에 별 문제는 없겠지만, 다른 직업 없이 강의만을 직업으로 하는 전업 강사에게는 큰 문제다. 전업 강사는 20181학기 대비 6,681(22.1%) 감소하였으나 1,977명이 타 교원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되어 강의 기회를 상실한 전업 강사 규모는 4,704명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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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이 시행되기 직전 학기인 20191학기에 생계가 막막해진 강사 4,704명은 강사법 시행 이후 강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직 공식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강사 채용 규모는 이전보다 더 많이 감소했을 것이다. 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시행된 강사법이 공채를 통해 채용된 강사의 처우에는 약간의 개선을 가져다 줄 순 있어도 공채에서 탈락한 강사에게는 강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곧 실업 상태에 처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사태를 두고 강사법 파동이라고 씁쓸해 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강사법 파동은 대학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싼 값에 부려먹다가 약간의 처우 개선에 들어갈 돈이 없다며 강사를 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히 야만성이다. 사용자의 야만성은 어느 곳에 가나 목격할 수 있는 것이라서 크게 놀라지도 않았지만, 더욱 경악스럽게 바라보았던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강사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야만성이다. 유일한 생계 수단인 강의를 더 이상 배정받지 못한 강사를 두고 다른 강사는 강의를 더 이상 배정받지 못한 것은 해고가 아니라고 말했다. 근로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위촉계약을 맺은 강사가 위촉 기간이 지나서 재위촉이 되지 않은 것일 뿐, 그것은 해고가 아니라고 했다. 원래부터 그 과목은 강사의 것이 아니라 학과의 것이었고, 학과는 전임 교수가 다 하지 못하는 강의를 강사들에게 맡기는 구조 속에서 어떤 과목의 강사가 꼭 전에 그 과목을 맡았던 강사일 필요는 없다면서 말이다. 그래, 맞다. 그 누군가의 말이 맞다. 원래부터 강의를 담당할 수 있는 권리는 강사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에는 김철수 강사가 맡았던 OO학개론을 이번 학기에는 김영희 강사가 맡아도 아무 문제없다. 그것은 강의 배정 권한을 가진 전임 교수 학과장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다. 강의만이 오로지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는 구조 속에서 동일 학문 영역 안에서 누군가의 강의 기회 상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강의 기회 확보 수단이 된다. 누군가가 대학 당국의 부당한 처우에 큰 목소리로 투쟁이라도 시작하면 그 투쟁을 도와주는 강사는 별로 없다. 오히려 투쟁하는 강사가 학교 당국에 찍히길 바란다. 그래서 저 사람이 하는 강의가 다음 학기에는 나한테 오길 기다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시간 강사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노동조합이 잘 될 리 없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계급 이해와 노동자 사이의 연대의식에 기초하는데 이 바닥에서는 동일한 계급 이해와 연대의식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일 학문 영역 내의 김철수 강사와 김영희 강사는 연대의식을 가진 동일한 계급의 노동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기회 상실이 다른 한 사람의 기회 확보로 이어지는 거의 완벽한 대체재 관계이다


강사법 시행 이후에 대학가에서 들려오는 여러 소리는 더욱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는다. 울고 웃고의 기준은 간단하다. 강사 중에 누가 강의를 잘하냐, 연구를 잘하냐의 기준이면 좋겠는데 그게 아닌 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어떤 강사는 열심히 공채에 응모했는데도 한 과목도 배정받지 못했는데, 누구는 여러 학교에서 6과목씩 배정받기도 한다. 한 과목도 배정받지 못한 강사는 이럴 거면 왜 강사법을 시행했냐고 강사법을 비난한다. 강사법이 시행되지 않았으면 이전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강의를 받아서 적으나마 생계를 꾸려갔을 텐데 그놈의 강사법이 자기 밥줄을 끊어놨다고 야단이다. 6과목이나 따낸강사는 강사법이 시행되면 많은 대학들이 강사를 줄일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최대한 많은 대학의 강사 공채에 응시했다고 했다. 그래서 20192학기에는 4개 대학에서 총 6과목 18학점 강의를 배정받았다고 좋아했다. “너무 많이 강의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 강사는 이렇게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좀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지금 다른 사람 사정 봐줄 상황이 아니라면서 이렇게 강의 배정을 받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 강의 배정을 못 받은 강사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능력은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연구 업적과 강의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였다. 강의를 배정할 권한을 가진 교수들을 많이 아는 능력, 그게 바로 이 사람이 말하는 능력이었다.


강사법이 시행되면서 강사에 대한 공개채용제도가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알음알음 방식이 선호되는 것처럼 보인다. 알음알음 내정자를 정해놓고 요식 행위로 공채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이 들려온다. 특출난 강의 경력과 뛰어난 연구 업적이 없어도 어느 대학의 어떤 교수가 어떤 강사의 선배이고 지인이면 그 학교에 가서 강의를 배정받는 구조가 여전히 남아있다. 강의가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어버린 강사들은 밥그릇을 두고 동료와 싸워야 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강사는 나에게 밥그릇을 던져 줄 사람을 되도록 많이 알아야하고,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소위 말하는 족보 없는강사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먹을 밥이 많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내 밥그릇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밥그릇을 두고 싸우면서 벌어지는 아비규환.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는다는 것은 이제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인가?


밥그릇을 공정하게 던져주지 않는 교수들, 교수들이 던져주는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아비규환을 벌이는 강사들. 이런 선생들이 학생들 앞에서 공동체정의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먹고 살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강의를 배정받기 위해 싸우는 강사들, 그런 강사들을 싸움 붙이는 대학들. 대학은 어쩌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대학에서의 삶은 왜 이리도 비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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